'배임죄, 이대로 괜찮은가' 국회 토론 지상중계
기업인 연 1000명 재판…적극적 경영활동 막아
이익 추구위해 모험하는 기업가 정신과도 상충
미필적 고의·단순 과실 안따져…아예 폐지를
[ 서욱진 / 박종필 기자 ]
정상적인 경영활동까지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기업 경영활동에 대한 과도한 형사적 개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배임죄는 기업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만큼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국회부의장)과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오락가락 배임죄 적용,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연 1000여명의 기업인에게 적용되고 있는 배임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현실 반영 못하는 배임죄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사적 개입”이라고 지적했다. 배임죄 처벌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정상적인 경영활동조차 제대로 수행 舊?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04년 이후 대법원이 심리한 기업인 배임죄 37건을 분석한 결과 정상적인 경영 결정을 보호해주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판례가 절반이 넘는 19건에 달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기업소송연구회장)는 토론에서 “현행 배임죄 규정은 형법 제정 당시인 1953년부터 존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배임죄를 적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배임죄 처벌 대상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개인사업자의 단순 하수인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배임 행위와 손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 교수는 그러나 “60여년이 지난 지금은 수많은 주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경영자의 경우 무엇이 배임인지 가리기가 불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강동욱 동국대 법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기업을 대상으로 한 형사처벌 움직임이 강화됐다”며 “경영권 승계 등 경영 방식에 대한 비판까지 고조되면서 배임죄 적용이 지나치게 확대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배임죄가 남용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배임죄 폐지하거나 개정해야”
신현윤 연세대 부총장(한국상사법학회장)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경영 활동을 배임죄가 가로막고 있다”며 “기업인들이 투자 결정을 유보하거나 철회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기화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부분 기업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배임죄를 적용하면 기업집단과 개별 기업의 이익이 충돌해 효율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임죄는 이익을 얻기 위해 모험을 할 수밖에 없는 기업가 정신과 상충되는 측면이 크다”고 덧붙였다.
참석자들은 배임죄의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손동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막지 않으려면 정갑윤 의원이 발의하는 형사법상 배임죄는 물론이고 상법상 배임죄까지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동욱 교수는 “대표이사나 이사회의 지시에 따라 한 일에 대해서도 배임 책임을 묻는 불합리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권한 없이 또는 권한을 부당하게 남용해 임무를 위배한 경우로 배임죄 범위를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전삼현 교수는 “국민의 사적 자치에 국가가 어쩔 수 없이 개입할 때에는 형사적 처벌보다는 행정적 규제를 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도덕적 비난의 대상도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배임죄에 대한 대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배임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최준선 교수는 “현행 배임죄로는 형사상 처벌이 필요한 미필적 고의와 단순 과실 여부를 명확히 따지기 힘들다”며 “배임죄는 폐지 또는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기화 교수는 “배임죄를 폐지하고 이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다른 법률의 보완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윤원기 법무부 검찰국 검사는 “배임죄는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배임죄를 폐지하거나 개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욱진/박종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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