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총리 사과만 인용…진정성 논란
"반성·사죄 계속해왔다"
"전장에서 상처 받은 여성…" 위안부 문제도 에둘러 언급
기존 '사죄 담화'서 후퇴
무라야마 "담화 초점 흐려져"…한·일 관계 다시 냉각 우려
[ 도쿄=서정환 기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일본의 식민지배·침략’을 명시하지 않은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를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각료회의 결의를 거쳐 발표한 담화에서 “일본은 지난 전쟁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해왔다”고 말했다.
역대 담화의 4대 핵심 단어인 ‘식민지 지배’ ‘침략’ ‘반성’ ‘사죄’가 포함되긴 했지만 사죄는 ‘과거형’으로 언급하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은 행동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아 진정성이 없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一) 전 총리 담화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담화에서 후퇴했다는 지적과 함께 아베 총리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후손에게 사죄 요구는 그만”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내각 출범 직후부터 자신의 역사인식을 담은 담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총체적으로는 역대 정권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침략’ ‘사죄’ 등을 놓고 전혀 다른 발언을 일삼으면서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왔다.
이번 담화에서도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에 포함된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 등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특히 아베 총리는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지금 인구의 80%를 넘겼다”며 “우리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또 “전장의 그늘에는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받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리면 안 된다”며 위안부 문제도 에둘러 언급했다. 하지만 이 역시 상처를 입힌 주체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없었다.
아베 담화는 약 4000자로 무라야마 담화(1300여자)보다 분량이 세 배 이상 길어졌다. 그만큼 자신의 신조와 정치·외교적 상황 사이에서 고민이 깊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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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담화와 상당히 달라”
아베 총리가 이번 담화에 역대 정권에서 발표한 담화에 형식상 4대 핵심 단어를 모두 포함한 것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 법제를 추진하면서 내각 지지율이 정권 출범 후 최저인 30%대 초반까지 추락했다. 참의원에서 안보법안 심의를 진행 중인 상황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한국과 중국에 사과의 뜻이 전해지는 담화를 내달라”고 촉구한 점을 의식해 4대 핵심 단어를 포함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이번 담화는 그동안 아베 총리가 보여준 역사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날 아베 총리의 담화 발표 후 오이타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초점이 흐려 전혀 (내용을) 알 수 없었다”며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 것 같은 인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사과’의 진정성 논란이 거세지면서 한·일 관계도 다시 냉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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