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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쿠바 아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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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설탕과 시가, 재즈와 춤, 그리고 헤밍웨이. 쿠바 수도 아바나의 ‘특산품’이다. 16세기 스페인이 건설한 이 도시는 카리브해 최고의 무역항이었다. 남미의 식민 도시에서 모은 보물을 스페인으로 옮기는 함대의 집결지였으니 돈과 사람이 넘쳐났다. 18세기 후반부터는 노예무역과 설탕 산업이 도시의 부를 이끌었다.

1837년 아바나에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철도가 들어선 것도 이 덕분이었다. 20세기 초 미국과 사이가 좋던 시절, 미국은 쿠바의 설탕을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사줬다. 1920년대 금주법 파동으로 이곳에 몰린 미국 사람들은 고급 별장과 클럽, 럼주, 카지노로 도시를 살찌웠다.

쿠바 시가의 명성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몬테크리스토 넘버원’을 사오라고 말하는 장면도 자주 인용된다. 쿠바 담배 이름이 왜 ‘몽테크리스토’였을까. 담배 공장 노동자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읽어주던 소설 중 가장 인기 있었던 게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즈와 살사는 아바나의 또 다른 문화 아이콘이다. 아프리카 노예들과 유럽 이민자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온갖 음악과 춤을 만들어냈다. 아바나 바닷가와 미라마르 지역은 쿠바 음악과 춤의 탄생지다. 영화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에 나오는 혁명과 춤의 배경이기도 하다.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 플로리디타에는 그의 동상이 앉아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한 암보스 문도스 호텔 511호에는 그의 유품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 25㎞ 정도 떨어진 어촌에는 그가 7년간 살았던 저택도 있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혁명 후 헤밍웨이는 미국으로 쫓겨갔지만 그를 찾는 사람들은 지금도 줄을 잇는다.

내일(현지시간 14일) 아바나에 성조기가 게양된다. 워싱턴DC에는 쿠바 국기가 오른다. 국교 정상화에 54년이 걸렸다. 하루 앞서 89세 생일을 맞은 피델 카스트로의 표정이 궁금하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노혁명가의 회한이 아바나의 노을빛만큼 발그레할까.

아바나에는 벌써 혁명적인 변화가 밀어닥치고 있다. ‘평등하게 빈곤한’ 사회주의의 낡은 시스템 사이로 ‘잘살아 보자’는 희망이 움트고 있다. 월급이 40달러밖에 되지 않아 새벽청소까지 해야 하는 의사와 교사들의 애환이야 금방 씻겨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식 패스트푸드점이 생기고, 여종업원들의 월급이 150달러나 되는 걸 보면 변화의 물살은 더욱 빨라질 듯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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