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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싼값' 대신 '제값' 주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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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가치 아닌 낮은 가격만 추구
품질 하락 초래해 기업경쟁력 추락
제값을 매기고 주는 사회 만들어야"

안경태 < 삼일회계법인 회장·객원논설위원 >



인천에서 제주를 오가던 세월호의 편도 요금은 1인당 7만원 정도였다. 운항 시간이 14시간가량으로 비슷한 인천과 중국 웨이하이(威海)를 오가는 배는 같은 시기 1인당 최소 11만원을 받았다.

한국 경영학계의 구루 중 한 분인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업이 공급하는 상품에 대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value)가 상품의 가격(price)보다 높아야 하고, 상품의 가격은 상품의 원가(cost)보다 높아야 한다는 생존 부등식(V>P>C)을 충족시키는 것이 기업 생존의 기본 과제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이 세 요소 중 하나인 가격이 치열한 시장경쟁을 통해 결정되는데, 이는 기업의 통제를 벗어나는 영역이다. 따라서 기업은 통제가 가능한 요소인 소비자 가치를 책정된 가격보다 높이거나 원가를 그보다 낮추는 데 주력하게 된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구매자의 파워가 공급자에 비해 월등한 ‘구매자 시장’이거나 정부 규제가 가격 책정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경우 공급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공급을 제한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에서 의료수가가 낮은 산부인과 등이 스스로 서비스 제공을 중단해 마산과 진해 등에는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병원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그 예다.

공급자가 택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원가, 즉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낮춰 강요된 가격에 맞추는 것이다. 이때의 문제는 가격보다 원가를 낮춰 당장의 생존력은 확보했으나 여기에서 나올 수 있는 소비자 가치 역시 낮아져,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생존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작게는 개인 소비자가, 좀 더 크게는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가치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가격에 맞춰 원가를 낮추고 그와 함께 최종 산출 서비스의 가치가 낮아지다 못해 결국 깊은 바다에 2014년 대한민국의 봄을 송두리째 수장시켜버린 세월호 사태가 이것의 슬픈 예다.

회계감사 분야도 마찬가지 고민을 안고 있다. 한국의 회계감사 시장은 대표적인 구매자 시장인데 요즘 들어 기업, 즉 구매자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감사 품질보다는 서비스 가격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처럼 생존력의 세 가지 주요 요소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가격이 낮게 책정되면 원가 요소(회계감사의 경우 회계사의 인원수나 시간을 줄이는 것이 대표적이다)를 조정해야겠지만, 회계감사가 지니고 있는 사회·경제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회계법인들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감사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회계산업의 생존력이 약해지고, 이는 한국 경제 전반의 지속가능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또 가격은 ‘신호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제3자가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가치를 추정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회계감사 서비스의 낮은 가격이 국내 및 해외 투자자들에게 회계감사 서비스가 이뤄내는 가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사회는 최근 낮은 의료수가가 초래한 지난 3개월간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처럼 당장의 이익을 위해 ‘싼값’을 선호하다가 사회 전체 총비용을 늘리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어 품격 있는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싼값’을 추구하기보다는 시장 안에서 서비스나 제품의 가치에 맞게 가격을 책정하고, 소비자가 지급한 돈이 ‘제값’을 하는 서비스나 제품의 고급화도 함께 추구해야 할 것이다.

안경태 < 삼일회계법인 회장·객원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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