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필기구가 뜬다
18캐럿 금 입힌 펜촉…표면은 車 코팅법 적용
오래써도 변형되지 않아
손글씨에 빠진 2030세대…개성있는 악세사리로 구매
[ 강영연 기자 ] 지난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에 있는 다비드컬렉션.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다양한 필기구가 눈에 들어왔다. 올 2월 문을 연 이곳은 양말 가방 모자 노트 필기구 등 남성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편집매장이다.
이 매장은 몬테그라파 파버카스텔 등 5개 브랜드 200여개의 필기구를 갖추고 있다. 홍승표 다비드컬렉션 매니저는 “하루에 20~30명가량이 매장을 방문한다”며 “고급 필기구를 좋아하는 마니아층뿐 아니라 최근 젊은이들의 구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나간 유행으로 여겨지던 명품 필기구들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손 글씨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면서 고급 필기구 수요가 늘고 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직접 쓴 손 글씨를 찍어 올리는 2030세대가 늘었다.
필기구를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로 생각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서세규 현대백화점 콘텐츠운영팀장은 “고급 필기구는 사무용품을 넘어 사용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액세서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급 필기구 매출은 2013년 13.4%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도 15.1%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필기구는 만년필이다. 만년필은 잉크를 보관하는 본체와 글씨를 쓰는 펜촉으로 구성됐다. 펜촉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공기가 들어가 본체 안의 잉크 통에 압력을 가하면 잉크가 빠져나와 펜촉 아래 공간에 머물다 펜 끝으로 나오는 구조다.
펜촉의 강도, 굵기에 따라 글씨가 달라지기 때문에 펜촉은 만년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제조회사들도 당연히 펜촉에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최초의 만년필 브랜드인 몬테그라파는 펜촉을 18K 금으로 만든다. 오래 사용해도 변함없는 글씨체를 유지하기 위해선 강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은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든다.
몬테그라파의 파울로 코엘료 만년필(1425만원)은 몬테그라파의 홍보대사를 지낸 작가 코엘료의 작품인 ‘순례자’를 주제로 만든 제품이다. 펜 뚜껑 부분에는 장인이 수작업으로 새긴 나침반 조각이 있고, 4개의 다이아몬드가 장식돼 있다. 18K 금으로 만든 펜촉에는 작가가 좋아하는 나비를 새겨넣었다. 이 제품은 세계에서 47자루만 생산됐다.
스위스 명품브랜드인 몽블랑 역시 펜촉을 18K 금으로 제작하고, 펜촉 끝에 백금을 사용했다. 세계에서 판매되는 몽블랑 만년필의 펜촉은 함부르크 본사의 장인들이 100단계 이상의 공정을 거쳐 제작한다. 몽블랑의 스타워커 어반 스피드 만년필(78만원) 펜촉은 순금 58.5% 함량의 금을 백금의 한 종류인 루테늄으로 도금해 만든다. 본체는 자동차와 항공기 표면에 사용하는 물리증착법(PVD) 코팅으로 잘 긁히지 않고 온도변화 등에 변형될 위험을 낮췄다.
만년필 본체의 아름다움도 명품 필기구를 규정하는 한 요소다. S.T.듀퐁은 1970년대부터 라이터에 사용한 금은 세공기법과 옻칠기법 등을 필기구에 적용하고 있다. 오트 크리에이션 피닉스(2900만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살아 있는 문화유산(EPV)’으로 인정받은 장인들과 함께 만든 제품이다. 본체에 새겨진 피닉스의 날개 하나까지 숙련된 장인들이 손으로 깎는다. 세계에서 88개만 제작된 한정판이다.
연필에도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이 있다. 1761년 설립된 독일 파버카스텔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필 회사로, 처음으로 육각 모양의 연필을 디자인했다. 빈센트 반고흐가 즐겨 쓴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퍼펙트 펜슬’(33만원)은 바이올린 등 악기에 주로 쓰이는 캘리포니아산 삼나무를 연마해 만들었다. 백금 순금 등으로 뚜껑과 몸체를 만들어 그 안에 지우개 연필깎이 등을 넣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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