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봉 기자 ]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별도로 떼어내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놓고 격론이 뜨겁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토론회를 통해 정부가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뜻을 내비친 이후 정치권은 물론 학계, 시민단체 등이 찬반으로 갈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연금이 굴리는 기금 자산은 500조원에 달한다. 2043년에는 2561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불어나는 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 연금 고갈 시점을 늦추고, 장기적인 재정 균형을 추구하자는 게 운용체계 개편의 목표다.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찬성론자들은 수익률 제고를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운다. 공사를 세워 예산과 인사의 자율성을 줘야 투자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실장은 “현 체계에서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나 가입자 대표 중심의 기금운용위원회 투자심의위원회 등이 투자 결정에 개입해 수익률을 훼손할 수 있다”며 “기금운용 조직 전체를 전문가로 구성해 금융조직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론자들은 공사로 독립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공사 체제로 출범한 한국투자공사(KIC)보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더 높다는 점을 논거로 내세운다. 무리한 수익률 추구가 오히려 기금 운용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꼽는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은 “지나친 고수익·고위험 투자는 노후소득 보장의 책임준비금인 기금의 손실 가능성을 확대해 연금제도의 불신만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찬성 / 투자전문가 영입, 운용 독립성 강화…국민연금 수익률 극대화 가능
금융조직으로 체질 바꿔야 수익모델 늘릴 수 있어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 기금은 2060년 고갈된다. 국민연금 재정을 지속 가능한 구조로 유지하려면 보험료 인상과 함께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보험료가 점진적으로 인상되기 때문에 젊은 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것을 고려한다면 현 세대는 쌓여 있는 막대한 기금을 허용위험 한도 내에서 최대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독립은 그래서 필요하다.
국민연금공단은 보험료를 받아 급여를 지급하는 등 복지 업무를 하는 곳이다. 500조원에 이르는 기금을 운용하는 금융투자 조직을 끌어안기에는 조직 성격이 맞지 않다. 현재 기금운용본부는 기금운용을 집행하는 조직으로서의 역할도 명확하게 정립돼 있지 않다.
기금공사 독립이 수익률을 올리는 것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단적인 예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인 캘퍼스(CalPERS)와 캐나다 공적연금공사(CPPIB)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둘 다 세계 5대 연기금으로 꼽히지만 운영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캘퍼스는 기금운용 조직이 하나의 부서인 반면 CPPIB는 기금운용 조직이 공사로 분리돼 있다.
두 연기금이 대체자산 투자에 지급하는 수수료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캘퍼스의 외부위탁 관리비용은 CPPIB의 3배 수준에 이른다. 공공기관인 캘퍼스가 더 많은 수수료를 주고 자금을 굴리는 것은 내부적으로 투자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캘퍼스와 비슷한 구조지만 더 열악하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있어 해외에서 활약하는 유능한 금융인재를 영입하는 데 캘퍼스보다 더 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실물자산 투자로 캘퍼스와 같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서는 캘퍼스보다 2배 이상 많은 위탁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금공사 독립은 해외 투자에서 더 전문적인 전술을 펴고 있는 캐나다 CPPIB가 아닌 캘퍼스 정도의 운용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기금공사로의 독립 없이 해외 투자를 늘리는 것은 기금운용의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펀드매니저는 혼자 일할 수 없다. 메이저리그 선수처럼 구단에서 역량 강화를 위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에 따라 기량이 좌우된다. 기금운용 조직 내에서 제공하는 각종 정보시스템, 유연한 인력채용, 보상체계 등이 잘 갖춰져야 해외 유능한 인재가 한국의 국민연금 조직으로 이직할 유인이 생길 것이다. 금융조직 체계 전환을 위해 기금운용 조직을 공단과 분리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공사로 독립하면 투자 위험이 커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주식 채권 등 전통자산군에서 시장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것과 대체자산 투자를 통해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대체자산 투자가 전통자산 투자보다 위험하다고 보기 어렵다. 전문성을 강화할수록 전술적, 전략적으로 자산배분과 허용 위험 한도를 적절히 조정하는 능력이 강해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연금심의위원회도 국민연금정책위원회로 변경해 연금 재정을 책임지는 기구로 격상해야 한다. 국민연금정책위원회에서 재정목표 달성에 필요한 준거 수익률을 제시하면 기금운용위원회는 이 수익률을 근거로 전략적 자산배분과 허용 위험 한도를 결정하는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전문성 위주로 구성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전략 수립과 전술을 지속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반대 / 장기 수익률, 시장 평균 넘기 힘든데…손실 위험·변동성만 커질 우려
안정성이냐 고수익이냐…국민 동의부터 구해야
정부는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수익률을 연 1%포인트만 높여도 차세대의 보험료 부담을 2.5% 낮출 수 있다며 기금운용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가입자 대표 중심으로 이뤄진 기금운용위원회 체제의 안정성 위주 기금운용을 전면 개편해 투자집행기구로서 금융전문가들로 구성한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안정자산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최근 국내 부문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결과 경기가 나아지고 있는 翎?국가 공적 연기금의 수익률을 밑도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의 평균 수익률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CalPERS), 캐나다 공적연금공사(CPPIB), 일본 공적연금(GPIF), 스웨덴 국민연금펀드(AP), 네덜란드 공적연금(ABP) 등 세계 5대 연기금과 비교할 때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들 해외 공적연금은 경기 변화에 따른 변동성이 매우 컸지만 국민연금은 안정적인 기조로 운영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의 기금운용 실적만 보고 마치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낮은 것처럼 호도해 기금운용체계 개편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부 개편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금 수익률만 높이면 재정수지 문제가 해결되는 양 왜곡하면서 재정수지 부담을 연금 적립기간의 기금 수익률에 과도하게 전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현실적인 목표수익률에 따라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기금운용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한다고 해도 장기 수익률은 평균적인 시장 수익률을 웃돌 수 없다는 것이 통계적 진실이다. 노후소득 보장의 책임준비금인 기금의 손실 위험도와 변동성을 증폭시켜 연금제도의 불신만 야기할 수 있다. 과연 현실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초과수익을 기대하면서 자신의 노후를 위험한 자산에 집중 투자하고 손실이 발생할 때 감수해야 한다는 데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고위험 자산인 주식과 대체투자를 중심으로 운영하던 캘퍼스와 CPPIB는 1년에 전체 기금의 20% 이상 손실이 발생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번 개편안의 모델이라고 하는 CPPIB는 채권 위주의 투자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투자 전문성 문제는 현행 기금운용위원회에 사무국을 두고 운용위원들을 지원하는 전문가 실무진을 보강해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돕도록 개선하면 될 일이다.
금융전문가로 기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과 같은 거대 연금기금은 자산배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사실상 결정된다. 금융전문가들이 어떤 구체적인 종목을 잘 선택해 수익률을 잘 내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이번 제도 개선안을 제안한 연구진도 동의하고 있다. 이번 개선안은 전략적 자산배분 역량 강화를 위해 금융전문가 중심의 조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지, 초과수익률을 실현하기 위한 운용체계 개편안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렇듯 이번 기금운용체계 개편의 논거로서 수익률의 대폭 증대는 실현될 수 없고, 손실 위험과 변동성만 확대할 우려가 크다.
정부는 이와 같이 위험한 기금운용체계 개편을 강행하기에 앞서 연금 지배구조에서 가입자의 대표성을 배제하고 금융전문가들에게 맡길지, 안정성보다 손실 위험을 감수하고 고위험 투자를 선택할지, 국내외 어디를 중심으로 투자할지 등에 대해 국민 동의부터 구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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