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진입 위해 일궈야 할 신산업
개인의 위험거래 참여 자유 늘리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풍토 조성을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
정보화시대가 새로운 생산활동을 속속 등장시키면서 또하나의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새로운 발상을 발빠르게 수용해 지금까지 없던 신(新)산업을 먼저 일으키는 나라가 선진국이 된다. 신산업 건설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모험이다. 그런데 따라잡기에 익숙한 우리 사회는 선도적 위험 부담에 익숙하지 못해 신산업 수용에 미적거리기 쉽다.
세월호 참사에 이은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가 대형사고에 얼마나 취약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을 대형사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사회안전이 가장 중요한 국정목표가 됐다. 한국사회는 한편으로는 대형사고의 위험을 관리해 더 안전한 사회를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모험 확대의 위험을 장려해야 한다.
세월호는 급선회하면서 균형을 잃었는데 복원력이 작동하지 않으면서 침몰했다. 아마 평형수를 빼고 과적한 탓일 것이다. 삼성병원에서는 메르스 감염자가 수많은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서 바이러스가 전파됐다. 병 ?측은 응급실 폐쇄를 미적거려 감염사태가 대형화하도록 방치했다.
한국의 종합병원 응급실은 환자로 넘쳐나므로 감염병에는 무방비지대라고 할 수 있다. 삼성병원처럼 초일류 병원일수록 더 붐비므로 감염병이 전파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참사 직전까지 세월호는 평형수를 줄이면서 과적했어도 아무 사고 없이 잘 다녔다. 초일류 병원의 미비한 방역태세도 메르스 이전까지는 별문제 없었다.
그러나 한 번 균형을 잃자 대형참사로 이어진 세월호처럼 메르스 환자가 한 번 나타나자 삼성병원은 속절없이 뚫렸다. 방역대책 없이 환자들이 득실대는 응급실은 바로 평형수 빼고 과적한 세월호나 마찬가지였다.
해운사나 병원은 과적이나 방역 무방비의 위험을 잘 알지만 이를 시정하는 데 드는 큰돈이 부담스럽다. 운임과 의료수가를 낮게 규제하는 정부도 사정을 잘 알기에 일탈적 관행을 알게 모르게 묵인해왔다. 이런 시한폭탄은 우리 사회의 도처에 아직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예컨대 태풍이 수도권의 송전탑 하나만 쓰러뜨려도 전국은 블랙아웃의 위험에 내몰릴 수 있다.
이 시한폭탄들을 사전에 하나하나 찾아서 제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붐비는 응급실과 과적 운항은 응급실 의료수가와 선박운임을 크게 올리지 않는 한 고치기 어렵다. 그런데 사람들이 요금 인상에 동의할까. 이미 당한 일을 시정하기도 쉽지 않은데 잠재적 위험을 적발 시정하는 일은 더 어려울 것이다.
전자상거래나 금융거래는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가능해진 신경제 활동이다. 대면거래와는 달리 인터넷이나 모바일 거래에서는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따라서 전자거래에서는 신형 사 璲?판을 칠 가능성이 큰데 본인 인증은 이런 사기를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인증과정이 너무 까다로우면 전자거래의 이점이 아예 사라진다. 전자거래는 인증을 위해 여러 차례 클릭해야 하는 한국보다 한 번 클릭으로 끝나는 미국에서 날로 번성한다.
전자거래는 새로운 거래방식이다. 재래식 방법으로는 거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지금으로서는 당사자들이 최대한 조심하고 전자거래 주도 업체가 스스로 안전을 강구하는 것이 최선이다. 미국에서 클릭 한 번으로 거래가 성사되는 까닭은 거래에 수반된 위험을 당사자들이 감수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고가 발생하면 그렇게나 위험한 거래를 대책 없이 허가한 정부가 규탄 대상이다. 책임 추궁이 부담스러운 정부는 전자거래에 까다로운 인증과정을 부과하기 마련이고 그 결과 전자거래 이용도는 크게 줄어든다. 개인이 위험한 거래에 참여할 자유를 누리고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회만이 ICT시대의 신산업을 선도한다. 신산업 육성과 사회안전을 함께 추구해야 하는 우리는 정부에 요구할 안전과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위험부터 구분해야 한다. 시한폭탄의 관행이 내포한 위험은 신기술산업을 개척하는 모험과는 본질이 다르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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