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26)
탈북시인 장진성의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
그는 초췌했다/-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그 종이를 목에 건 채/어린 딸 옆에 세운 채/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팔리는 딸애와/팔고 있는 모성(母性)을 보며/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땅바닥만 내려보던 그 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제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고함치며 울음 터지며/딸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 줄도 몰랐다/당신 딸이 아니라/모성애를 산다며/한 군인이 백 원을 쥐어주자/그 돈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딸을 판 백 원으로/밀가루빵 사 들고 허둥지둥 달려와/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전문/시인 장진성)
작가의 말처럼 그의 시집은 그냥 시집이 아니라 생생한 북한 르포다. 작가는 독자들의 손을 끌어 북한의 남루한 시장통으로 데려가 작고 초라한 모녀 앞에 세운다. 죽어가는 벙어리 여인이 어린 딸을 팔고 있는 비극의 현장에서는 눈물마 ?사치다. 드디어 이별의 순간, 어머니는 모성을 판 100원으로 허둥지둥 사온 밀가루 빵을 딸아이의 입에 넣어준다. 우리는 안다. 그 순간 어머니가 먹인 것은 그냥 빵이 아니라는 것을. 나라가 끝내는 굶겨죽일 어린 자식에게 어머니만이 줄 수 있는 간절한 ‘생명’이라는 것을.
굶어죽은 이들을 위한 위로문
시인 장진성은 2004년 탈북에 성공해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탈북 작가다.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는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약 4년간 굶어죽은 300만명의 죽음을 세상에 폭로하는 (시로 쓰인) 증언서다. 그의 시는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세습왕조를 떠받들고 살찌우는 데 동원되어 정작 자신들은 말라죽어버린 가련한 영혼들을 위한 위로문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하고 조선노동당 작가로 활약하며 김정일을 독자로 가졌던 촉망받던 시인. 그는 계속되는 아사(餓死)의 행렬을 보며 더 이상 방관자로 있을 수 없다는 양심의 소리를 좇아 2004년 두만강을 넘었다. 탈북이라는 사선을 넘으면서도 품에 안고 지켜낸 그의 글들은 운문이 갖는 함축의 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그 어떤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보다 더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꿈 속에서/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간밤에 밖으로 달려 나갔을까//꿈 속에서/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총을 쏘는 군대도 무서워 안했을까//꿈 속에서/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손에 그걸 꼭 쥐고 죽었을까//그 꿈은 죽으면서도 놓지 않은 그 꿈은/작은 옥수수 하나(‘아이의 꿈’ 전문)
쌀이 없는 집이여선지/그 집엔 숟가락이 없다/숟가락마저 팔아서/언젠가 아버지 제사상 차렸다//누가 행복을 원치 않으랴/죽물을 마시며 살아가는/그 집 다섯 식구/소원은 하나같았으니//앞으로 살림이 조금 펴지면/집안에 두고 싶은 첫 재산은/숟가락/다/섯/개(‘숟가락’ 전문)
‘밥’대신 ‘포고문’ 먹이는 세습왕조 고발
친구들과 놀이하는 꿈을 꾸기에도 바빠야 할 작은 아이. 그 어린 영혼을 몽유병환자처럼 옥수수 하나 쫓아가게 한 사람이 누군가. 먹을 것이 없으니 더 이상 숟가락조차 필요없어진 절망의 세상으로 몰아넣은 이는 누군가. 장진성 시인은 어린 아이의 작은 배 하나 채울 길 없이 철저하게 망해버린 정권에 절망한다. 그 와중에도 자신들의 배는 불리고, 체제 유지를 위한 신격화에는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 뻔뻔한 위선에 분노한다. 그가 탈북했을 때는 김정일 정권이었으나 이제는 꼭 그만큼 살찐 김정은의 나라가 되어버린 북한을 작가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인민과/함께 굶는다며/줴기밥 먹는다는/가난한 나라의/‘가난한’ 영수(領袖)여//이 나라 밥은/누가 다 가져 가서/백성도 못 먹는데/너 또한 한 줌이냐//참말로 한 줌이면/백성들의 살은/어디 가고/너의 그 비만은/어디서 생긴 살이냐//너 즐겨 먹는다는/상어요리들/돈 주고 사 오고도/식욕을 못 참아/납치까지 해 온 외국 요리들/그것이 네 줴기밥이냐//봐라 너 ㏏??간부놈들 호통치지 않느냐/영수(領袖)도 고작 줴기밥인데/누구냐 감히/한 그릇을 바라는 자들이!/살아있는 배고픔을 투정하는 놈이!//한 줌도 못 먹는 백성들을/한 줌으로 우롱하는/네가 있는 한/줴기밥 이 나라에/더운 밥 세상이 언제 오랴/한 그릇 세상이 언제 오랴//하건대 독재자여/제발 소원이다/너 줴기밥 먹어서/백성들은 먹을 것도 없다니/제발 다이어트 그만하고/한 그릇, 두 그릇도 먹어라/백성들 줴기밥 좀 먹어보게(‘장군님의 줴기밥’ 전문=줴기밥은 주먹밥이란 뜻이다)
그 궁전은/산 사람 위해서가 아니다/수조 원 벌려고/억만금을 들인 것도 아니다//죽은 한 사람 묻으려고/삼백만이 굶어죽는 가운데/화려하게 일어서/우뚝 솟아서//누구나 침통하게 쳐다보는/삼백만의 무덤이다//(‘궁전’ 전문-궁전은 김일성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말함)
북한인권은 당장의 문제
장진성의 시는 이제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 그의 시는 북한인권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 놓는다. 북한 인권 회복은 언젠가 도달해야 하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문제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살기 위해서 죽음과 가장 가까운 길을 택해야만 했던 2만7000여 탈북자들의 절박함도 장진성의 시를 통해 내게 전달된 것이다. 2012년 3월 나는 옥인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북송 저지를 외치는 여러 명의 시민과 탈북자 속에 함께 있었다.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들을 북으로 강제 송환하려는 중국 정부에 맞서 사람들은 호소하고 또 호소했다.
태어난 고향/눈물도 같은 혈육/그리운 마을 사람들/지나간 아련한 추억들//우리는/이 조국을 버린 것이 아니다//자유 없고/인권을 유린하고/누구나 가난하고/단 한 사람만 사람인//이 조국이/우리를 버린 것이다(‘우리는 조국을 버리지 않았다’ 전문)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단꿈에 빠졌는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아이들. 손과 발을 살짝 쥐어본다. 따뜻하다. 말랑말랑한 생명의 느낌이 전해져 온다. 북쪽 어딘가 내 아이들과 꼭 같은 아이들이 냉골에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늘도 잠들었을 것이다. 내일 눈을 뜬다고 장담할 수 없는 그 아이들의 배고프고 아픈 잠은 어떻게 깨워줄 수 있을까. 지구상의 한 곳 한반도, 그 중의 한 곳 대한민국에 태어난 아슬아슬한 행운으로 굶지 않고, 정신을 구속당하지 않으며, 폭력에서 보호되는 행운을 누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작가 장진성 역시 그의 사명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답해야 할 때다. 세계가 먼저 나서 북한 인권 결의안을 채택하는 동안에도 10년 넘게 북한인권법이 표류하는 나라, 가장 악랄한 독재정권을 아직도 미화하고 변호하는 사람들이 정당을 만들고, 사회지도층을 자처하는 세상을 변화시킬 몫은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전희경 <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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