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 고두현 기자 ]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60대 여성 가족의 사연이 기막히다. 병원에서 남편 간병 중 감염 사실이 확인됐는데, 남편이 지난달 말 폐암으로 입원할 때 응급실에 있던 메르스 ‘슈퍼전파자’로부터 옮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 문병 온 두 아들도 메르스 의심 증세를 보였고, 그중 큰아들은 격리 병동에 들어갔다. 그새 남편은 숨졌다.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부산 사는 남동생이 서울로 매형 문병을 왔다가 메르스에 걸렸고, 급기야 부산 지역 첫 사망자가 됐다. 또 다른 동생 부부도 문병 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순식간에 두 명이 목숨을 잃고 일가 다섯 명이 감염돼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어제 대구에서 나온 첫 확진자도 지난달 병문안을 다녀온 사실이 확인됐다. 함께 다녀온 누나는 그보다 먼저 감염됐다.
'우르르 병문안' 감염률 7배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이 국내 메르스 확산의 주 원인 중 하나로 꼽은 ‘한국식 문병’의 폐해다. 메르스 확진자 10명 중 4명이 환자 문병이나 간병 과정에서 감염됐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환자 36만여명의 병원 내 감염 현황을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보호자나 간병인이 함께 있을 때 폐렴 감염률이 상주하지 않을 때보다 일곱 배 가까이 높았다.
‘아픈 사람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 사회의 오랜 관습이다. 환자를 찾아 위로하는 게 정서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온갖 데를 돌아다니다 병실에 들른 문병객은 면역력이 약한 환자에게 수많은 균을 옮기는 감염 통로다. 손을 씻지 않고 환자를 만지는 건 예사고, 치료에 해가 될지도 모르는 음료나 과일을 강권하기도 한다. 선한 의도이지만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병실을 지키는 우리 문화는 좀 별쭝나다. 일본은 20여년 전에 완전히 없앴는데 우리만 그대로다. 외국에서는 병실 출입과 시간이 엄격히 제한되고 간호는 가족이나 간병인 손을 빌리지 않고 간호사가 전담한다. 병실도 문제다. 우리는 1~2인실보다 5~6인실이 대부분이다. 좁은 병실에 환자, 가족, 문병객, 간병인 등 10명 이상이 북적댄다.
포괄간호서비스제 앞당겨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무분별한 문병 관습과 보호자, 간병인이 병실에 상주하는 제도를 빨리 없애야 한다. 원칙적으로 병원이 간호 인력을 충원해 모든 의료적인 처치나 간호를 전담하고 병실에는 환자만 상주하게 하는 것이 옳다. 문제는 의료 인력과 재원 확보인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보호자 없는 병원이라는 포괄간호서비스제도가 있지 않은가. 2013년 7월부터 전국 33개 병원에서 시범 사업을 이미 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건강보험제도도 일부 적용했다. 2018년부터는 전국 막?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낯 뜨거운 정쟁으로 의료 예산이 깎이지 않는다는 게 전제다.
그때까지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수칙은 있다. 병문안을 꼭 가야 한다면 환자 상태에 따라 면회 가능 여부와 시간을 확인하고, 환자 침대에 앉거나 만지지 말며, 면역력 약한 환자에게는 꽃을 들고 가지 말아야 한다. 물론 병에 대한 근본 인식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 미국의 질병예방관리센터, 유럽의 질병예방통제센터가 다른 것은 사후 ‘관리’와 사전 ‘예방’의 명칭 차이뿐일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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