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개혁' 목소리 높이는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로스쿨·司試 출신 갈등 원인은 일자리 적은 탓
한 해 배출되는 변호사 수 1000명으로 줄여야
대법관 출신 개업 막아 '전관예우' 부작용 타파
상고법원 설치 대신 대법관 30명으로 늘려야
[ 김인선 기자 ]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지난 2월 취임 후 3개월 만에 유명 인사가 됐다. 법원·검찰과 함께 이른바 ‘법조 3륜(輪)’의 한 축을 담당하는 단체의 수장이어서가 아니다.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들을 거침없이 도마에 올려서다. 지난 3월 변협에서 “전관예우를 타파하겠다”며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서를 반려한 일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2017년 폐지 예정인 사법시험 존치와 상고법원 설치 반대, 검사평가제 연내 도입 등의 정책을 추진, 법원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대한변협 회장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이렇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을까. 그의 구상을 들어보기 위해 최근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재야변호사로 밑바닥부터 출발, 30년을 지내 법조계의 병폐에 대해 누구보다 잘 홱?rdquo;고 말했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사법시험 존치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은 지난 100여년간 공정하게 법조인을 배출한 제도입니다. 서민의 아들딸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했죠. 중졸 출신으로 헌법재판관을 지낸 변정수 변호사,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판사와 대한변협 부회장 등을 거쳐 3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헌기 전 의원 등 학력과 집안 경제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게 사법시험입니다. 국회에 사법시험을 존치시키는 법안 5개가 상정돼 있습니다. 올해 안에 법안이 통과돼 2017년에 사법시험이 폐지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사법시험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를 병행할 수 있을까요.
“사법시험 출신과 2009년 출범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 간 알력이 있습니다. 서로가 피해자라고 생각하죠. 사법시험 출신은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사건을 더 많이 수임할 수 있었을 거라 말하고, 반대로 로스쿨 출신은 사법시험 출신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갈등의 근본 원인은 일자리가 적어서입니다.”
▷양측 갈등을 해결할 방안이 있습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한 해 배출되는 신규 변호사 수를 2000명에서 절반(로스쿨 800명+사시 200명)으로 줄여야 해요. 변호사가 1만명이 되는 데 10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2만명이 되는 데는 8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5년 뒤에 변호사가 3만명이 됩니다. 변호사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 행정소송을 지금은 담당 공무원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비전문가인 공무원이 법정에 나와 국가소송을 제대로 대리할 수 있겠습니까.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국가소송을 수행하도록 한다면 국가 승소율을 높이고, 청년 변호사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대학원까지 나온 고급인력을 놀게 하면 나라 손해입니다. 이걸 단순히 변호사 ‘밥그릇 챙기기’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로스쿨 원장들에게도 쓴소리를 했는데요.
“로스쿨 원장들이 변호사 시험에 통과한 제자를 취업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자리에 취업시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내 제자를 취직시키느냐 아니면 다른 로스쿨 출신이 그 자리를 채우느냐의 문제일 뿐이죠. 기존 채용시장 안에서 노력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로스쿨 원장들이 새로운 변호사 직역을 창출하는 데 동참해줬으면 합니다.”
▷재야 변호사로 오랜기간 활동하셨죠.
“밑바닥부터 출발해 고용변호사로 5년, 개업변호사로 25년을 일했습니다. 법원과 검찰의 잘못된 점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왔어요. 법조계에 없애야 할 병폐가 전관예우입니다. 대법관 전관예우가 가장 큰 문제죠. 고위 법관을 지낸 법조인이 실력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값으로 고액 수임료를 받는 거예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3년에 100억원을 못 벌면 바보’라는 법조계 속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난해 대법원에 재판을 뺑맨?사건 3만8000여건 중 8000여건은 심리불속행 제도(상고사건 가운데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은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에 따라 이유도 없이 기각 처리됐습니다. 그래서 큰 비용을 들여서라도 너도나도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최고심 재판을 받으려는 거죠.”
▷전관예우 타파에 대한 해법이 있습니까.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 개업을 막아야 합니다. 대법관도 자신의 명예를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의식을 바꿔야 해요. 후학 양성, 법원의 상임조정위원, 무료 법률상담 등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길은 많습니다. 대법관은 국민의 존경을 먹고사는 자리 아닙니까.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면 나중에 변호사로 개업해 돈을 벌 것인지 대법관이 돼 명예를 세울 것인지 결정해야 해요. 피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국민입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최소 3000만원을 마련해야 하니까요.”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 입장인데요.
“대법원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대법원이 심리하고 통상적인 상고사건은 상고법원이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상고법원 설치는 명백한 위헌입니다. 헌법 101조2항은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고 규정하는데, 상고법원이 어떻게 각급법원에 포함될 수 있습니까. 3심제가 아니라 4심제가 되죠.”
▷법원 측은 “대법관이 처리하는 사건이 너무 많다”고 지적합니다.
“국민은 대법관에게서 재판받기 위해 상고하는 것이지, 고등법원 판사가 심리하 ?상고법원에서 재판받으려는 게 아닙니다. 3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상고법원 판사는 대법원장이 임명하면 끝이에요. 상고법원을 설치하면 차관급 자리가 100여개 늘어나는데 그 예산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 아닙니까. 대법관 숫자를 30명으로 늘리고, 과태료 사건처럼 간단한 사건은 별도의 규정을 둬 대법관의 부담을 줄이는 게 옳습니다.”
▷올해 안에 약속한 검사평가제 도입이 가능합니까.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의자는 22명으로 2013년(11명)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검사평가제를 통해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생각입니다. 피의자 신문조사에 참여한 변호사들이 특정 검사와 사건에 대해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에요. 각 검사에 대한 평가가 축적되면 이를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전달할 것입니다. 검사평가를 통해 검찰의 수사관행을 바꾸고 이를 통해 ‘사법치사(司法致死)’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취임 초부터 사법개혁을 강조했습니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법원과 검찰 등 법조계는 시대 흐름을 좇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도가 시대를 앞서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시대의 추세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은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기존의 제도를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 그게 개혁입니다. 그러려면 판·검사가 쥐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놔야겠죠.”
하창우 회장은…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법원 검찰을 거치지 않고 30년간 변호사 외길을 걸어온 순수 재야 출신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이어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오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변회 회장 시절 법관평가제를 도입해 호평받았다. 두 번째 도전 끝에 임기 2년의 제48대 대한변협 회장에 당선했다. 선거 운동 당시 사법시험 존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서울법원종합청사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취임 후 사법시험 존치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고, 법조계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난해 서울변회 변호사 평균 수임 건수가 월 2건”이라며 “빈곤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아침 신문에서 경제 관련 기사를 읽고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스크랩북에 차곡차곡 모으는 신문 애독자다. 지금까지 만든 스크랩북만 수십 권에 달한다.
△1954년 경남 남해 출생 △1973년 부산 경남고 졸업 △1978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1983년 사법시험 25회(사법연수원 15기) △1986년 하창우법률사무소 변호사 △1997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 △2001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2003년 대법관 법관임용심사위원회 위원 △2007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2015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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