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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KOREA 2015 창조포럼] "기초과학은 도구 아닌 문화…모든 씨앗 싹 틔우라는 재촉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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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대담

뇌, 너무 어려운 도전과제
인간의 뇌엔 1000억개 뉴런
집단지성 게임 만들어 전세계 18만명이 연구 참여

한국, 창의성 키우려면…
아이디어 도처에 넘쳐나지만 신념 가지고 실행하는 게 관건



[ 정리=전설리 / 박병종 기자 ]
창조경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인재와 기초과학 육성이 필요하다. 10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경제신문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스토롱코리아 창조포럼의 주제를 ‘기초가 강해야 융합시대 승자 된다’로 제시한 이유다.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 뇌과학자 세바스찬 승 프린스턴대 교수가 김두철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과 창의성과 창의적인 인재 육성 방안, 기초과학의 미래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김두철 원장=(승 교수는)하버드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신경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융합형 인재라고 볼 수 있다.

▷세바스찬 승 교수=한 사람이 여러 분야를 아는 것이 융합형 인재라면 그렇다. 프린스턴대에서도 컴퓨터공학과 신경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학문적 발전을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커넥톰(connectome) 연구팀에는 많은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예컨대 분자생물학자 신경생리학자 물리학자 컴퓨터공학자 게임디자이너 등이 있다.

▷김 원장=승 교수가 이끄는 커넥톰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 달라.

▷승 교수=‘커넥톰’은 뇌신경계 연결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인간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게놈(genome) 프로젝트 이후 최대 과학혁명으로 불린다. 뇌의 활동 여부에 따라 신경의 연결상태(배선도)도 바뀐다. 잦은 생각과 강한 경험은 굵은 배선을 만들고, 망각은 연결을 끊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뇌 지도가 바뀐다. 과거엔 뇌의 특정 영역이 특정 기능을 도맡아 한다는 가설이 학계를 지배했다. 하지만 뇌의 일부가 망가져도 다른 영역이 그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계기로 뇌의 특정 부위가 아닌 뉴런 간의 네트워크 자체가 뇌 기능의 핵심이라는 가설이 생겼다. 커넥톰 지도를 완성하고 나면 의식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김 원장=커넥톰 지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리는 것인가.

▷승 교수=인간의 뇌는 아직 도전하기 너무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훨씬 쉬운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초로 완성된 커넥톰 지도의 주인공은 1986년 나온 ‘예쁜꼬마선충’이란 길이 1㎜의 분홍색 벌레였다. 예쁜꼬마선충을 50nm(1nm는 10억분의 1m)의 두께로 얇게 잘라 그 슬라이스의 2차원 사진을 찍은 뒤 이 사진들을 쌓아 올려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지도를 완성했다. 예쁜꼬마선충은 302개의 뉴런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 뇌의 뉴런 수는 1000억개다. 인간 뇌에 도전하기에 앞서 중간 목표로 쥐의 망막 커넥톰에 도전하기로 한 이유다. 문제는 기존 방식으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쥐의 망막 사진에서 뉴런과 시냅스의 연결을 골라내는 작업은 특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아이와이어’란 집단지성 게임으로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이 커넥톰 연구를 도울 수 있게 했다. 현재까지 130여개국에서 18만명 이상이 아이와이어에 참여하고 있다. 네이처지에 논문을 발표할 때 공저자 목록에 아이와이어를 넣고 가장 기여도가 높은 플레이어 2000명의 명단을 첨부했다.

▷김 원장=최근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회장 등은 인공지능의 발달이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승 교수=문제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악마적인 본성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 발표한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산된다. 그러나 8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현실화하지 않았다. 인간을 위협하는 인공지능의 출현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김 원장=미국 정부는 인간의 뇌 지도를 작성하는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특정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보나.

▷승 교수=2013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당시 나도 백악관에 초대받았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도 국가 차원에서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올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가마다 추진하는 방법은 다르다. 일본은 단일 목표를 가지고 통합된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여러 개의 소규모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나는 그중 두 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재능있는 인재들을 많이 참여시켜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김 원장=한국이 기초과학의 어느 분야에 투자해야 할까.

▷승 교수=정책 전문가가 아니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분명한 것은 재능있는 인재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장님께 질문하고 싶다. 왜 기초과학인가.

▷김 원장=기초과학이 던지는 질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우주의 탄생 원리와 구성 물질이 무엇인가다. 둘째는 생명체의 원리, 셋째는 생명체의 의식, 즉 뇌의 기원과 작동원리 등이다. 세상과 인간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란 점에서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흔히 과학을 도구로 인식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과학은 문화다. 과학이 발달하면 문화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 장기적인 과학의 과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때문에 당장은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없더라도 긴 안목으로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기초과학이 가진 특성 때문에 연구비를 지원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기초과학 연구 과정은 어둠 속에서 헤매는 것과 같다. 뚜렷한 연구 목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연구 목표가 분명한 공학과 다르다. 해결책은 뭘까.

▷승 교수=씨를 뿌린 뒤 한두 개만 싹이 터도 인정해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싹이 트는 데 시간이 걸려도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씨에서 싹이 나기를 기대하는 공학적 접근 방식을 적용해선 안 된다. 기초과학의 성과에 가치를 두는 문화도 중요하다. 독일엔 ‘괴테의 길’이 있다. 길에 위대한 철학자, 과학자 이름을 붙인다. 철학, 과학적 성과의 가치를 높게 매기는 것이다.

▷김 원장=창의성에 관해 묻겠다. 한국의 모든 연구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창의성이다. 무엇이 인간을 창의적으로 만든다고 보나.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를 키울 수 있을까.

▷승 교수=창의성은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라기보다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려는 의지와 태도다. 실리콘밸리에는 “아이디어만으로는 가치가 없다. 실행이 전부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디어는 도처에 넘쳐나지만 정작 그 아이디어를 제대로 실행하는 것은 어렵다. 유튜브와 같은 아이디어를 가진 업체가 많이 있었지만 결국 성공한 것은 유튜브 하나다. 창의성은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아이디어를 선택해 신념을 가지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 세바스찬 승 교수는
미국 뇌신경 연결지도 ‘커넥톰’ 프로젝트 주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4월 뇌의 작동원리를 밝혀내는 연맙?1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뇌 신경계 연결지도인 ‘커넥톰’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미국 뇌연구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2012년 12월 쥐 망막 특정구간의 신경세포(뉴런) 간 연결지도를 컴퓨터 협업으로 작성하는 ‘아이와이어(EyeWir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텍사스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으며, 공상과학소설을 즐겨 읽었다. 우주를 탐험하고 싶었던 소년은 인간의 뇌라는 ‘소우주’를 탐색하는 뇌과학자가 됐다. 그의 아버지는 서양철학자인 승계호 텍사스 오스틴대 석좌교수다.

약력 △1966년 미국 뉴욕 출생 △1986~1990년 하버드대 물리학 박사 △1992~1998년 미국 AT&T 벨연구소 연구원 △2004~2013년 MIT 뇌인지과학과, 물리학과 교수 △2014년~현재 프린스턴대 신경과학연구소 교수

■ 김두철 원장은
한국 기초과학 이끄는 연구분야 수장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선진국보다 취약한 기초과학 역량을 높이기 위해 2011년 출범했다. 산하 25개 연구단별로 연간 최대 1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작년 9월 취임한 김두철 원장은 통계물리학에 정통한 석학이다. 1974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전기공학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7월부터 2013년 6월까지 고등과학원(KIAS) 원장을 지냈고 서울대 교육상, 대한민국정부 근정포장, 제20회 수당상(기초과克菅? 등을 받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산악반 활동을 한 김 원장은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기회만 있으면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을 탄다.

약력 △1948년 서울 출생 △1970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4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이학박사(통계물리학) △1977~2010년 서울대 자연과학대 교수 △2010~2013년 고등과학원(KIAS) 원장 △2014년~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정리=전설리/박병종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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