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언제나 기술과 인문의 교차점에 있다.”
정보기술(IT) 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남긴 이 말은 인문이 기술 발전의 씨앗임을 함의한다. 기술 발전은 결국 인문의 힘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문이 꿈을 꾸고, 그 꿈을 기술이 실현할 때 인류의 진보가 빨라진다는 얘기다. 인류의 참된 진보는 정신과 물질이 균형을 맞춰야 가능하다. 물질은 넘치지만 정신이 타락하면 문명이 쇠락하고, 정신이 풍요로워도 물질이 지나치게 부족하면 그 문명은 초라해진다.
인문은 문(文), 사(史), 철(哲)을 아우르는 말이다. 문학으로 상상력을 키우고, 역사에서 현재를 사는 지혜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키우고, 철학으로 사물을 보는 통찰력과 사유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것이 바로 인문이다. 기술이 물질을 풍요롭게 하는 바탕이라면 인문은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씨앗이다. 인문은 사고의 근력(筋力)을 키운다. 본질을 꿰뚫는 통찰,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 융합·통섭으로 새로운 창의를 만드는 힘도 대부분 인문에서 나온다.
철학은 다양한 사유의 방식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피타고라스는 철학을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 그 이상을 포괄한다. 철학은 현상 너머의 본질(이데아)을 보려 하고 인간이, 행복이, 정의가 무엇인지를 다양한 각도로 비춰본다. 다양한 현상에서 단일한 원리를 추구하는 것이 과학적 사고라면, 동일한 현상·사물에서 다양한 의미를 캐내는 것은 철학적 사고다. 과학이 다양성을 동일성으로 환원한다면, 철학은 동일성을 다양성으로 분해하는 셈이다. 사유의 폭이 넓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과학적 사고, 철학적 사고를 자유롭게 왔다갔다한다는 의미다.
달리기는 대표적 ‘유산소 운동’이다. 산소 공급을 늘려 신체 기능을 활발하게 하고, 육체를 더 건강하게 만든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철학은 ‘뇌의 유산소 운동’이다. 사유의 공간을 확장시키고, 사유의 주체성을 키우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과학처럼 똑 부러지는 정답은 없지만 다양한 생각의 가지들을 펼치는 학문이다.
철학은 글쓰기에도 알찬 씨앗이다. 인용할 것도 많지만 나름의 생각을 펼치는 틀을 제공하는 것 또한 철학이다. 철학적 기초가 단단하면 국어 과학 역사 등 다른 공부의 효율성도 크게 높아진다. 공부라는 것이 결국 그 토대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특히 논술로 대학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라면 철학적 지식을 탄탄히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대입이 아니더라도 철학은 삶의 품격을 높여준다. 4, 5면에서 동서양의 철학적 흐름을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