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숫자 증가·평균수명 연장
급여 상승 감안하면 '속임수 개혁'
연금재정 문제 근본 혁신하려면
국가 총보수 상한부터 설정해야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감만 못하다’는 속담은 ‘가다가 중단해도 간 만큼은 이익이다’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나마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이라도 통과시키자는 주장이 바로 그런 경우다. 사상 첫 사회적 합의 운운하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체면도 일부나마 살게 되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보장 약속이 슬그머니 사라진 것은 여야가 모두 분주하게 청년 표를 계산해본 결과일 것이다. 청와대도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수용할 모양이다.
연금 수리전문가들의 계산으로는 앞으로 70년 동안 333조원이나 감축한다는 것이어서 그 규모가 일단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속임수가 들어 있다. 모든 추정은 조건을 어떻게 주는가에 달려 있다. 조건이 동일하다면(ceteris paribus) 당연히 이런저런 수리적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숫자다. 세계는 그렇게 정태적이지 않다.
연금재정을 결정짓는 요소는 많다. 이번에 내 塚?조건의 변경은 지급률과 기여율이다. 이는 공무원 개인의 퇴직 후 연금 소득을 결정짓는 공식이지 연금재정을 결정하는 공식이 아니다. 나는 공무원 개개인이 어느 정도의 연금을 받게될지에 대해서는 사실 관심이 없다. 국민연금과의 비교도 거부한다. 국민연금은 엄밀하게 말해 사회적 부조일 뿐 연금이 아니다. 그것을 사실상 소득인 공무원연금과 비교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한국 공무원들이 생애소득에서 부족함이 없고 그들의 가정이 충분히 중산층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계산은 계산이다. 지급률 기여율 등은 개인 연금액을 계산하는 기준이기는 해도 연금재정의 변화를 계산하는 모수들은 아니다. 연금재정을 결정짓는 요소에는 공무원의 숫자, 공무원의 재직 소득, 평균적 수명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지금 공무원들의 수명은 (일반 국민들과 차이가 없다고 보고) 매년 5개월씩 늘어나고 있다. 10년이면 거의 4년8개월치를 더 받게 된다. ‘수명의 연장’이라는 하나의 요인만으로도 333조원의 절감액을 모두 상쇄하고 남을 것이다. 여기에 공무원 숫자의 급증이 기다리고 있다. 공무원연금을 처음 설계할 때 공무원 숫자는 30만명이었다. 지금 그것이 107만명으로 불어났다. 이 수치는 한국의 대중 정당들이 존재하고 큰 정부와 규제공화국을 주장하는 동안 절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날 것이다. 지금의 속도가 지속된다면 불과 20년이면 200만명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준공무원도 많아서 ‘사실상 공무원’ 숫자는 이미 160만명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 수치를 감안하면 공무원 숫자는 거대한 퍼즐이 된다.
이들에게 주어야 하는 공무원연금 총액은 추정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공무원 급여의 상승도 감안해야 한다. 이번 찔끔 개혁만으로도 공무원들의 급여투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엄포도 많다. 공무원 급여는 벌써 대기업 평균 수준으로 육박해 있다. 공무원연금 제도가 만들어질 때 공무원 급여는 국민 평균소득의 48% 선이었다. 지금 그런 급여 수준을 공직자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공직자들에게 가능한 한 높은 급여를 주는 것은 청렴한 정부를 위해서도, 우수한 공직자를 선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어떻든 공무원 총 숫자 증가, 급여 수준 상승, 수명 연장을 감안하면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수표에 쓰여진 가공의 숫자에 불과하다. 공무원 개개인의 연금은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연금재정은 전혀 개혁되지 않았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먼저 국가의 총보수 부담능력의 상한부터 설정해야 한다. 정부가 장기간에 걸쳐 공무원 제도를 어떻게 운영해갈지에 대한 어떤 준비나 예측도 없이 연금액 운운하는 것은 사안의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작은 정부, 효율적인 공직제도, 충분하고 적절한 급여에 대한 고찰 없이 의원들이 제멋대로 가공의 숫자를 남발하는 것은 공무원연금 제도에 대한 무지의 결과다. 국정을 이렇게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인지.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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