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범죄 취약 동네'가 달라졌다
캐릭터 벽화 등 골목환경 바꿔
부산 양지골, 절도 52건→0건
폐가도 관리…청소년 범죄 예방
[ 박상용 기자 ]
부산 칠산동은 여성에게 성기를 노출하는 ‘바바리맨’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2013년 경찰에 접수된 바바리맨 신고만 9건이었다. 항해일 동래경찰서 생활안전계장은 “주택가에 좁은 골목과 빈집이 많아 바바리맨이 숨을 장소가 많은 데다 홀몸노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라 길에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변 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경찰들도 안심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 초 칠산동을 관할하는 동래경찰서가 동네 곳곳에 폐쇄회로TV(CCTV)와 비상전화기 등을 설치해 환경 개선에 나서면서 바바리맨 출현 횟수는 4건으로 전년보다 크게 줄었다.
부산지방경찰청(청장 권기선·사진)은 지난해 2월 칠산동처럼 범죄에 취약한 지역 16곳을 선정해 ‘셉테드(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행복마을 사업’을 진행했다. 셉테드는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거리 등 도시 전반을 설계하는 것이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의 5대 범죄(살인 강도 강간·추행 절도 폭력) 발생은 2013년 97건에서 지난해 33건으로 65.9% 줄어들었다.
셉테드로 사라진 좀도둑
셉테드가 시행되고 있는 양정2동 양지골의 주택가 골목을 지난 20일 찾았다. 낡은 담벼락에 화사한 벽화를 그려 골목 분위기가 밝게 바뀌었고 방범용 CCTV와 비상벨도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골목 모퉁이마다 노란 배경에 경찰 캐릭터가 그려진 번호판이 눈에 띄었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해당 번호만 말하면 경찰이 신고 지점을 바로 알고 출동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집집마다 대문에 설치된 하얀 우체통도 눈에 들어왔다.
임홍란 부산진경찰서 생활안전계장은 “낙서, 유리창 파손 등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지저분한 환경이 범죄율을 높일 수 있다”며 “우체통이 없어 우편물이나 신문지 등 폐지로 너저분했던 대문 앞이 깔끔해졌다”고 말했다.
부산 경찰의 이 같은 노력에 양지골의 범죄가 확 줄었다. 2011년 이후 3년간 52건의 절도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좀도둑이 많은 지역이었지만 지난해부터 단 한 건의 절도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마을에 30년 넘게 거주한 김순희 씨(63)는 “수십년 동안 좀도둑 때문에 불안했는데 요즘은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범죄 아지트였던 빈집·폐가 차단
2010년 폐가에서 여중생을 성폭행한 뒤 살해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길태 사건의 유사사건 재발 방지도 셉테드의 중요한 목적이다. 폐가는 강력범죄 이외에도 비행청소년의 아지트나 노숙자 거처 등으로 이용돼 지역 범죄율을 높인다.
부산 경찰은 셉테드 시행 지역에서 폐가의 출입문을 폐쇄하고 경고문을 부착하는 등 특별관리에 들어갔다. 김창수 금정경찰서 생활안전과 주임은 “비행청소년들이 이불과 취사도구를 들고 들어가 음주를 하는 등 폐가가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2차 범죄의 위험이 있었다”며 “지금은 경고문을 부착하고 수시로 경찰과 주민이 순찰해 비행청소년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폐가 순찰 등 셉테드 관련 업무에 지역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강부성 서울과학기술대 건축학부 교수는 “셉테드는 경찰이 주도한다고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동네 환경을 관리하려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라며 “부산은 주민의 참여가 원활히 이뤄져 성공적인 셉테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경찰의 셉테드가 효과를 내면서 부산시청과 각 자치구, 부산지방검찰청 등도 관련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달 28일 경찰과 검찰, 부산디자인센터 및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셉테드 실무협의회의 심사를 거쳐 동구 수정동, 부산진구 부암동, 동래구 칠산동, 사하구 신평동을 2015년 셉테드사업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부산=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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