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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인물] '중국 문화대혁명의 주동자' 장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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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인물] '중국 문화대혁명의 주동자' 장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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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 이미아 기자 ] “나는 마오 주석의 한 마리 개였다. 그가 물라 하면 물었을 뿐이다.”


    마오쩌둥의 네 번째 부인이자 문화대혁명의 주동자였던 장칭(江靑)은 1980년 12월24일 중국 베이징 특별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같이 소리쳤다. 장칭은 1914년 중국 산둥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리칭윈(李靑雲). 15세 때 배우가 됐지만 별로 주목받진 못했다. 두 번 이혼하고,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다. 1936년 옌안에서 만난 마오쩌둥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1939년 마오쩌둥과 결혼한 장칭은 1966년 5월16일 문화대혁명 발발을 계기로 최고권력자의 아내이자 문화대혁명 주도 4인방(장칭, 왕훙원,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중 한 사람으로서 10여년간 위세를 떨쳤다. “나를 섬기는 것은 인민을 섬기는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한 뒤 그는 급속히 몰락했다. 장칭은 1980년 반혁명 주범으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고, 사형이 선고됐다. 1983년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자택에 연금됐지만 1991년 베이징에서 77세를 일기로 자살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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