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그 자체만으로는 가치를 갖지 못한다. 기술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치 있는 기술이 된다. 기술이 돈을 만들고 돈이 다시 투자되어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전 세계서 가장 효율적으로 실현된 곳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다. ‘최첨단 기술의 산파’이자 ‘혁신의 성지’라 불리는 이유다. 21세기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실리콘밸리가 월가 금융 인재들을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다. 월가에서 받았던 연봉의 2~3배에 달하는 수백억원 이적료를 받으며 거물급 인재들이 세계 정보기술(IT)의 심장부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 경제 ‘힘의 균형’이 금융산업을 대표하는 월스트리트에서 IT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로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건 스탠리 CFO 구글로 이직최근 세계 최대 인터넷기업 구글의 최고재무책임자(CFO)에 루스 포랫 전 모건스탠리 CFO가 임명됐다. 미국의 대표적 인터넷 기업인 구글에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의 2인자를 영입한 것이다. 포랫은 이적료 명목으로 현금과 무상 주식 인센티브를 합쳐 약 7100만달러(788억원)를 받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월가 CFO를 거액을 주고 데려올 만큼 구글이 성장한 점과 미 경제의 중심축이 월가에서 실리콘밸리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회사 트위터가 골드만삭스 출신 앤서니 노토를 영입했다. 애플의 인수합병(M&A) 책임자인 에이드리언 페리카 역시 골드만삭스 출신일 정도로 ‘월가 인사들의 실리콘밸리행’이 빈번해지고 있다.
월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국민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져 인재들의 직장으로서 인기가 낮아지고 있다. 월가가 더 이상 고액 연봉과 안정성이 보장된 선택이 아니란 인식에 인재들의 실리콘밸리행이 가속화되고 있다.
과수원서 ‘세계 IT 심장부’로 변신실리콘밸리는 세계에 어느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지명이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샌프란시스코 베이 남부에 있는 샌타클래라밸리 및 그 주변 지역을 일컫기 때문이다. 불과 70~80년 전만 해도 실리콘밸리는 토지가 비옥해 과수원이 많은 시골이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 이후 미국 방위산업의 대규모 연구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1939년 스탠퍼드 공대 동창생이었던 윌리럼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창업한 휴렛팩커드(HP)가 실리콘밸리의 시작이다.
초기 실리콘밸리는 반도체·컴퓨터 하드웨어 관련 기업이 이끌었다. 이후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신기술 등장에 따라 주도기업도 바뀌었다. HP를 비롯해 인텔 애플 구글 시스코 등 기존 강자와 페이스북 트위터 에어비앤비 우버 등 젊은 기업까지 어우러져 세계 IT의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주산업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세운 우주항공사 스페이스엑스는 ‘우주 택시’ 사업을 지난해 미국 정부로부터 따냈다.
신규 억만장자, 실리콘밸리서 나온다최근 포천지가 선정한 2015 억만장자(1826명) 목록 분석 결과, 40세 미만 억만장자 상위 10명 가운데 대부분이 실리콘밸리 출신의 IT 전문가로 나타났다. 6명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해 부를 쌓았고 그중 4명은 페이스북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근무 경력이 있다. 단순 유산 상속자는 2명에 불과했다.
압도적 1위는 단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공동 창립자 겸 CEO(30)다. 그의 순자산은 3510억달러(약 37조5300억원)로 2위인 던스틴 모스코비츠보다 5배 이상 많다. 페이스북의 공동 창립자인 모스코비츠(30)와 페이스북이 인수한 모바일 메신저 와츠앱 공동창립자 겸 CEO 잔 코움(38)이 77억달러(약 8조2300억원)의 순자산을 보유해 2위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실리콘밸리의 엄청난 부가가치는 인턴의 월급에서도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창의적 인재 선점을 위해 일반 기업 직장인 월급여의 2배 수준으로 인턴 급여를 지급한다. 페이스북의 인턴은 월급여는 6800달러와 매달 추가 주거비 1000달러를 받는다.
■ 실리콘밸리는 ‘마초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