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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기업들 떠난 자리 중국·일본이 속속 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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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 경제 활력 되찾는 러시아를 가다

유가 반등…지정학적 위기 완화
루블화 가치, 저점 대비 30% 상승

"미래 보고 거대시장 선점하자"
中·日 기업, 현지 공장 투자 '박차'

한국은 현대·기아차 빼곤
투자 중단에 사업 철수 잇따라



[ 김은정 기자 ]
지난달 말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서는 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작년 루블화 값 폭락으로 수입 건축자재 가격이 폭등해 중단됐던 쇼핑몰 공사가 하나둘씩 재개되고 있었다. 시내에서 만난 직장인 이바노프 표트르비치는 “1년 전보다 20%가량 오른 점심값은 여전히 부담이지만 경제위기 충격에서는 확실히 벗어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국제유가 급락과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가 겹쳐 휘청거리던 러시아 경제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긴장감이 완화되고 국제유가도 반등하고 있어서다. 작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글로벌 기업이 빠져나간 빈자리는 중국과 일본 기업이 빠르게 채워나가고 있다.

안정 찾아〈?러시아 경제

지난해 러시아 경제는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했다. 재정 수입의 약 50%를 차지하는 국제원유 가격은 미국의 셰일혁명에 따른 공급 과잉 우려로 작년 하반기 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 50% 이상 급락했다. 작년 7월부터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경제 제재가 시작됐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의 신용등급 강등 경고가 이어졌고 미국 달러당 30루블대를 유지하던 루블화 가치는 작년 말 70루블까지 급락했다.

경제 위기에 따른 매출 감소와 환율 변동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글로벌 기업들은 앞다퉈 러시아에서 사업 축소나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는 러시아 현지 생산라인을 접기로 결정했고 코카콜라와 펩시코, 덴마크 맥주회사 칼스버그도 공장 폐쇄와 사업 축소를 결정했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건 지난달부터다. 작년 3월 크림자치공화국이 주민 투표로 러시아 귀속을 결정하면서 촉발된 우크라이나 내전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유가는 최근 두 달 새 40% 상승해 배럴당 60달러까지 올랐다. 지정학적 우려가 잦아들고 유가 상승과 올 하반기 경제제재 해제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루블화 가치는 50달러대를 회복했다.

사업 기회 찾는 中·日 기업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러시아 시장의 경쟁 구도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서방 기업들이 발을 빼는 사이 중국과 일본 기업이 공격적으로 시장을 파고들었다. 인구 1억4200만여명의 세계 9위 내수시장을 놓칠 수 없는 데다 과거보다 적은 비용으로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일본 부품업?SMC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만2000㎡의 토지 매입을 추진 중이다. 산업용 밸브와 필터 생산공장을 세우기 위해서다. 공장뿐 아니라 연구개발과 교육센터까지 건설할 계획이다. 총 투자액은 30억루블(약 645억원)로 이르면 2017년부터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일본 타이어업체 브리지스톤도 최근 현지 생산 공장의 추가 투자를 결정했다.

중국 기업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중국 최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제조업체 창청자동차는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93㎞ 떨어진 툴라에 제조공장을 설립 중이다. 또 다른 중국 자동차 제조업체 리판도 리페츠크에 연 6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제조공장을 세우고 있다. 투자액은 153억루블 정도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빌로프 세르게이유리비치는 “올 들어 중국과 일본 기업을 중심으로 업무용 대지와 사무용 빌딩 매입 관련 문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뒷걸음질치는 韓 기업

반면 한국 기업 상황은 러시아 현지 생산 공장이 있는 현대·기아자동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업이 투자를 중단하거나 사업을 철수하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최근 러시아 수출을 잠정 중단했다. 루블화 가치가 떨어져 차를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LG하우시스는 러시아에 파견 근무 중인 직원을 장기 출장자로 전환하는 등 사업 축소를 결정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올 들어 7개 한국 기업이 철수했다.

러시아에서 15년째 사업하고 있는 박원규 로뎀케이LLC 대표는 “한국 기업이 떠난 자리는 고스란히 중국과 일본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며 “건설장비, 철강, 타이어시장 등에서 이들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 러시아 경제가 회복됐을 때 사업 재진출을 노리는 한국 기업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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