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아버지의 마음’ 중)이라고 김현승 시인은 노래했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다 그렇다고 했다. 유난히 눈물이 많았던 박용래 시인은 봄비를 보고 ‘서서 운다’고 했다. ‘오는 봄비는 겨우내 묻혔던 김칫독 자리에 모여 운다/ 오는 봄비는 헛간에 엮어 단 시래기 줄에 모여 운다/ 하루를 섬섬히 버들눈처럼 모여 서서 우는 봄비여.’
이럴 때 눈물은 슬픔의 상징이지만,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의 ‘호곡장론’에서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낸다”고 했다. 슬플 때만이 아니라 기쁠 때, 화날 때, 즐거울 때, 사랑할 때, 미워할 때도 울게 되니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확 풀어 버리는 데 소리쳐 우는 것보다 더 빠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눈물의 성분은 98%가 물이고 나머지는 단백질, 염화나트륨, 탄산나트륨, 인산염, 지방 등이라고 한다. 살균작용을 하는 리소자임도 포함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눈물이라도 경우에 따라 화학적 성분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이다. 양파를 깔 때보다 슬플 때 흘리는 눈물에는 단백질이 많고, 화날 때 교감신경 흥분으로 흘리는 눈물에는 나트륨이 많으며, 슬프거나 기쁠 때 부교감신경 흥분으로 흘리는 눈물에는 수분이 많다고 한다.
어떤 경우든 눈물에는 카타르시스(정화)의 힘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이 비극(悲劇)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 불안·긴장감이 해소돼 정서가 순화된다. 그러니 슬퍼서 흘린 눈물은 위로가 되고, 기뻐서 흘린 눈물은 환희가 된다. 눈물에는 세정 효과가 있어 ‘비누로 몸을 씻고 눈물로 마음을 씻는다’는 말도 생겼다.
일본 의학연구팀은 “우는 게 웃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도쿄의 한 호텔에 울고 싶은 여성을 위한 ‘크라잉 룸(통곡의 방)’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지 싶다. 하루 1만엔(약 9만원)에 방음처리된 객실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실컷 울 수 있도록 최루성 영화 DVD와 눈이 퉁퉁 붓는 것을 방지하는 아이마스크까지 준비해 놓았다고 한다.
여자는 남자보다 감성지수가 몇 배나 높아서 눈물과 웃음이 많다. 그 덕분에 평균수명이 높다는 얘기도 있다.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사내는 평생 세 번만 운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하지만 그런 남자들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된다. 눈물이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통곡의 방’ ‘치유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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