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김영란법 등 개혁법안
국회 손타며 본래 취지 크게 훼손
정부 "합의 과정서 철저히 배제돼"
[ 조진형 / 이승우 기자 ]
멀쩡한 법안이 국회만 거치면 괴물이 되는 과정은 19대 국회 들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구조개혁이나 증세 등 이해관계가 극명한 법안일수록 국회만 가면 ‘용두사미’에 그치거나 ‘누더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애써 대책을 세우면 뭐하냐”는 자조 섞인 푸념이 관가(官街)에 젖어든 지 오래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회에 법안 넘기기가 겁난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2일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개악(改惡)’의 전형을 보여준다. 공무원연금에 손을 댄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높이고 재정에 미치는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정부 안이 국회로 넘어가면서 당초 목적은 크게 훼손됐다. 국민연금과의 통합이라는 구조적 개혁은 협의 초기단계부터 뒷전으로 밀렸다. 재정절감 효과도 반감됐다. 연금지급률(현행 1.9%)은 1.25%로 시작했다가 1.65%(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안)로 수정된 뒤 결국 1.7%로 높아졌다.
애꿎은 국민연금까지 끌어들이면서 합의안은 누더기가 됐고, 국민 부담은 오히려 늘어나는 기형적인 결과를 낳았다. 공무원연금을 2085년까지 333조원 줄이는 대신 여야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합의로 국민 부담은 2083년까지 1669조원으로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요즘엔 국회에서 중대 결정을 내릴 때 담당 부처와 상의조차 하지 않는다”며 “이번 공무원연금 합의 과정에서도 행정부는 철저하게 배제됐다”고 했다.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깃발을 내걸었던 ‘김영란법’도 마찬가지였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손을 타면서 원안에는 없던 언론사 직원과 사립학교 교원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반면 5조2항에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개선을 제안하는 경우’에는 적용을 배제했다. 정치인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민감도가 높은 세법은 국회만 가면 누더기가 되기 일쑤다. 임대소득 과세는 지난해 2·26 대책→3·5 보완→6·13 보완→7·17 보완 등 네 번이나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누더기로 전락했다. 원래는 2주택자의 경우 월세 소득자든, 전세 소득자든 14%의 단일세율(분리과세)로 세금을 물리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하지만 결국 2주택자 전세 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은 철회됐고, 월세 소득에 대한 과세 시기도 늦춰진 채 법안이 통과됐다. 월세 소득 과세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2주택자 전세 撚嚥〉?세금을 물려야 한다던 세제 원칙은 휴지 조각이 됐다.
2013년 8월 정부가 내놓은 세법 개정안도 여론에 휘둘리면서 수차례 번복됐다. 당시 기재부는 복지 재원 확충 등을 위해 연소득 3450만원 이상 근로자의 세부담을 늘리는 ‘증세안’을 내놨다. 대다수 중산층의 세부담 증가액은 월 1만~2만원 수준으로 제한하고,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대폭 늘리는 방식이었다. 여야는 처음엔 높이 평가했다가 ‘월급쟁이 증세’라는 비판 여론이 형성되자 등을 돌렸다. 증세 기준선은 발표 닷새 만에 연봉 5500만원으로 높아졌다. 결국엔 소득세율 최고세율(38%) 과표구간을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하향 조정하는 조건이 더해져 법안이 변질됐다.
조진형/이승우 기자 u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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