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저가항공사 에어아시아 키운 주역 헬만 시토항 회장
"한국, 국내시장 제패후 주변지역으로 진출하는 금융사 나와야"
이 기사는 04월23일(13:5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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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에 '금융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나오길 기대하기보다 한국 최고의 투자은행(IB)에서 동북아 지역 최고의 IB로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헬만 시토항 크레디트스위스(CS) 아시아·태평양 본부 회장(CEO)은 대한민국 IB업계의 성장전략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에서다.
◆'금융의 삼성·현대차는 왜 안나오나?'
시토항 회장은 "삼성과 현대차가 워낙 빨리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다보니 한국인들이 '금융 부문에선 왜 글로벌 회사가 나오지 않냐'는 의구심을 가질 법 하다"면서도 "제조업과 금융업은 성장 방식이 다른 만큼 '글로벌 제조업체는 있는데 글로벌 금융회사는 왜 없는가'란 질문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글로벌 IB를 갖길 원하지만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에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을 길러내지 못하고 있고, 인도 같은 인구 대국도 금융허브를 건설하는데 애를 먹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시토항 회장은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 국가들의 IB 육성전략에 대해 체험에서 우러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글로벌 투자은행가다. 그 자신부터가 IB업계의 변방인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현지 출신이 CS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의 아·태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은 시토항 회장이 처음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장과 명문대 경영학석사(MBA) 학위가 당연시되는 IB업계에서 현지 대학 공대 출신인 점도 시토항 회장 특유의 이력이다. 인도네시아 반둥공과대학(BIT)에서 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2년간 인도네시아 유전지대에서 기름밥을 먹었다.
아시아·태평양 IB업계에서 시토항 회장은 아시아 최대 저가 항공사인 에어아시아를 키워낸 투자은행가로 더 유명하다. 2002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쪽방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에게 처음으로 3000만달러를 조달해줬다. 이 돈으로 비행기 6대를 구매한 에어아시아는 13년만에 45억달러 가치의 회사로 성장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고유가로 에어아시아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부채감축과 유상증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 수렁에서 구해냈다.
박지성과 윤석영이 활약한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QPR의 구단주로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이에 대한 답례로 CS의 온라인 광고에 시토항 회장과 함께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토항 회장은 "CS는 IB와 프라이빗뱅킹을 연계한 포괄적인 금융상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에어아시아 같이 갓 창업한 회사에도 IB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기업에 포괄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시아의 기업가의은행(Entrepreneur’s Bank of Asia)'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재패부터 먼저..도약의 기회는 온다
IB업계의 밑바닥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그가 한국에 제시한 IB전략은 지역제패론이었다. DBS나 UOB와 같은 싱가포르 및 홍콩 거점의 금융회사들처럼 국내 시장을 먼저 제패한 후 주변 지역으로 거점을 넓혀가는 모델이다.
시토항 회장은 "국내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서 살아남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생존경쟁을 통해 기른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략적인 이점을 누릴 수 있는 주변 지역으로 진출해야 한다"며 "'한국 대표 금융회사'에 먼저 도달한 후 '동북아 대표 금융회사'로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출입은행 같은 정책금융기관과 KB금융지주 같은 대형 금융그룹 가운데 한국시장을 제패한 금융사가 주변 지역으로 진출해야 한다"며 "한국의 시중은행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시장이어서 진출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짜고짜 뉴욕과 홍콩 같은 금융 중심지로 진출해 전세계 대형 금융사들 틈바구니에서 시달리기보다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다보면 도약의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시토항 회장은 "웰스매니지먼트(WM) 부문의 강호였던 CS가 IB 부문에서도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합작법인을 설립하면서 인연을 맺은 미국의 대표 IB 퍼스트보스턴을 1990년에 100% 인수하면서부터"라고 말했다.
◆30~40년 금융생태계 조성한 싱가포르·홍콩도 부침 겪었다
시토항 회장은 CS 고위 임원으로 승진한 이후 10년 넘게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활동해왔다. 금융 변방과 아시아 금융허브를 모두 경험한 만큼 동북아 금융허브를 꿈꾸는 한국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싱가포르 및 홍콩과 같은 아시아 금융허브와 서울의 격차를 인프라스트럭처와 금융전문성이 아우러진 금융 생태계의 존재유무로 요약했다. 동남아시아 한가운데 위치한 싱가포르와 그레이터 차이나(중국 대만 홍콩)의 중심인 홍콩은 입지부터 금융 생태계가 싹틀 조건을 두루 갖췄단 것이다.
시토항 회장은 "천부적인 입지조건에 정부의 육성의지가 더해져 30~40년간 금융허브로 다져진 싱가포르와 홍콩 조차도 부침을 겪어왔다"며 "서울은 지역 금융허브전략보다 국내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통화완화 정책으로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일본 기업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시토항 회장은 "중국 또한 공격적으로 지 ?시장을 노리고 있어 한국 기업들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도 "경기침체로 헐값에 나오는 기업은 많고 자금조달비용은 낮아져 M&A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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