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다. 일감몰아주기 이슈에서 벗어나고 대주주의 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합병 후 안정적인 경영을 위한 대주주 지분(약 30% 추정)은확보될 것으로 보여서다.
다만 합병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권이 과도하게 발생할 경우 SK를 중심으로 3조원 가량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두 회사의 공개매수 단가보다 현재 주가가 높기 때문이다.
◆ SK그룹의 지주사 합병 결정…왜 지금일까
그렇다면 SK그룹이 이 시점에서 합병을 결정했을까. SK와 SK C&C의 주가는 지난 2월말 이후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대주주 지분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려 합병을 해야 안정적인 경영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있다.
SK C&C의 주가가 오르고, 반대로 SK의 주가가 하락할수록 합병비율이 대주주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SK C&C의 시가총액(주식을 시가로 표시한 금액)은 이미 SK보다 4조원 가까이 많다. 최태원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중인 SK C&C의 지분 가치가 그간 충분히 불어났다는 얘기다.
'유동성 장세' 등에 힘입어 SK의 주가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상승할 경우 SK와 SK C&C의 합병 결정은 이전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증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중선 키움증권 지주회사 담당 연구원은 "앞으로 양사의 합병과 관련해 걸림돌은 주식매수청구권이 과다 발생할 경우"라며 "그러나 SK C&C와 SK 둘다 주식매수청구권행사가보다 현재 주가가 높은 상태라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때와 시장 분위기는 확실히 다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병 결정 후에 두 회사 주가가 내려가면 또 다른 변수가 생길 수 있지만, 주가가 오르면 이번 합병은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공개매수 단가보다 주가가 위에 있으니 주주총회에서도 통과는 무난할 것이란 설명이다.
◆ SK그룹의 지배회사 간 합병 나오기까지…일감몰아주기 부담
실질적인 그룹 지배회사 SK C&C와 SK 지주회사는 이른바 '옥상옥'의 지배구조였다. 따라서 SK그룹은 양사 간 합병과 지배구조 변경을 통해 그룹의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확보하고, 그룹 내 일감몰아주기 등 부정적인 이슈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실제로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 C&C는 2013년 그룹 내부거래액이 8648억원으로 전체 매출액 대비 37.6%에 달했다. 정보기술(IT) 매출액으로 비교하면 60.1%가 내부거래액이다.
2014년 2월에는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특수관계인 지분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는 20%)는 관계회사의 거래에 제한을 받는다. 2012년에 공정위는 SK그룹 7개 계열사가 SK C&C를 부당 지원했다면서 3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SK C&C는 지난해 공정위의 이러한 결정에 소송을 제기, 승소했지만 일감몰아주기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SK C&C는 일감몰아주기 이슈에서 벗어나고 대주주의 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양사 합병 후 SK C&C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분할하고, 그룹사 의존도를 낮춰 나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 지주사 간 합병을 위한 SK C&C의 3년간 '고군분투'
SK그룹은 최태원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SK C&C 지분을 보유(약 43%)하고, SK C&C가 SK 지주회사를 지배(31%)하며 SK가 그룹 계열사를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계열사수는 80여개로 국내 최대로 알려져 있다.
SK C&C는 따라서 1998년 설립 이후 기업가치 증대를 위해 사업영역을 다각화해왔다. 2000년에 보안솔루션 공급과 보안 관련 자회사인 인포섹을 설립했고, 2011년엔 구글 월렛을 위한 TSM 솔루션 공급계약도 맺었다.
2012년부터는 보다폰과 모바일 커머스 사업계약과 중고차 매매업체인 엔카를 인수했고, 2013년에 엔카를 흡수합병했다. 지난해에는 중고 휴대폰을 수거해 판매하는 에코폰 사업에 뛰어든데 이어 홍콩 스마트 디바이스 유통업체인 ISD 테크놀로지를 인수, 반도체 모듈 사업에도 진출했다.
주식시장에서 현재 SK의 시가총액은 약 8조40000억원인데 비해 SK C&C의 시총은 12조원을 웃돌고 있다. 자기주식 약 12%(2014년 사업보고서 기준)까지 감안하면 대주주는 합병 후에도 안정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 연구원은 ""사업적으로 SK C&C는 그동안 실질적인 지주회사였는데 SK 때문에 그간 SK계열사와 시너지를 누리지 못한 부족분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현금 흐름도 좋아질 것이고 SK 역시 그룹 내에서 역학적인 불확실성이 해결된다는 측면에서 양사에 모두 긍정적인 합병"이라고 평가했다.
◆ 지배구조 개편 이후…'사촌 형제'간 계열분리 가능성도
이번 합병 이후 최태원, 최신원 회장 간 계열분리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국투자증권은 "SK그룹은 최태원 회장(고 최종현 회장 장남)이 그룹 전반을 지배하고 있지만, 사촌인 최신원 회장(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측이 SKC, SK케미칼, SK텔레시스 등을 실질적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최신원 회장은 SKC와 SK텔레시스를 맡고 있고, 동생 최창원은 SK케미칼과 SK가스를 맡아 경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사촌 형제간 계열분기 언급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분석.
이 증권사는 "가장 먼저 SK와 합병 이후 SK C&C 사업부문을 자회사로 분할하고 해외 매출 비중을 높여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 현재 지분구조상 SKC와 SK텔레시스의 추가적인 지분 변동이 있을 경우 계열분리를 중장기적인 이슈로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최성남 ·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sul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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