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위 제약기업 다케다 첫 외국인 CEO 크리스토프 웨버
분단위로 쪼갠 스케줄
직원 만남·현장 방문 등 엑셀표로 만들어 관리
루머에 적극 대응
자신 둘러 싼 소문에 전사원에 직접 이메일
속도내는 글로벌화
연구·판매 조직 구조조정…아시아 사업 강화나서
[ 나수지 기자 ]
2013년 11월 일본 최대 제약회사 다케다의 주주총회장. 주주들은 웅성거렸다. 이 회사 230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이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47세이던 프랑스 출신 크리스토프 웨버가 주인공.
그는 20년간 영국계 대형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서 일한 경력이 있지만 주주들은 반대했다.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거나 ‘전통 있는 일본 기업인 만큼 외국인 COO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해 4월 COO로 다케다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석 달도 채 안 돼 최고경영자(CEO)로 지명됐다. 초고속 승진이었다. 그는 올해 4월 다케다 최초의 외국인 CEO로 취임해 다케다의 글로벌화를 이끌고 있다.
글로벌 시대, 외국인 CEO가 회사를 이끄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분위기는 다르다. 일본에서 외국인 CEO가 일본 기업을 이끌어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올림푸스의 마이클 우드퍼드 사장, 노무라홀딩스의 제스 바탈 영업총괄 CEO, 소니의 하워드 스트링어 회장, 일본판유리의 크레이그 네일러 사장 등 일본 기업을 이끌었던 외국인 CEO들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일본을 떠났다. 성공한 CEO로 꼽히는 이는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CEO 정도다.
외국인 CEO 핸디캡 적극적으로 극복
일본에서 외국인 CEO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일본 기업의 이중적 기업문화 때문이다. 외국인 CEO들은 겉으로는 글로벌화를 외치면서도 안으로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분위기를 유지하는 일본 기업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웨버 CEO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다케다는 1781년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 창업 이래 다케다 가문이 줄곧 CEO를 맡아왔다. 다케다 가문이 아닌 사람이 CEO가 된 것은 웨버 CEO 직전인 하세가와 야스치카 CEO(현 회장)뿐이었다.
웨버가 COO로 선임될 당시 주주들은 하세가와 CEO의 글로벌 전략에 불만이 높았다. 하세가와 CEO가 일본 기업인 다케다의 고유성을 무시한 채 글로벌화에만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두 개의 외국 제약기업을 인수하는 등 다케다의 외국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회사 회의실에서는 영어만 사용하라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
웨버의 임명은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주주들은 다케다가 외국에서 이익을 내는 데 눈이 멀었다고 비판했다. 글로벌화를 위해 너무 많은 리스크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루머도 이어졌다. ‘웨버가 다케다의 라이벌이자 프랑스 제약기업인 사노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거나 ‘그가 다케다의 본사를 파리로 옮기고 싶어한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 다케다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그는 전 사원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다.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직원들과의 스킨십도 늘렸다. 다른 외국인 CEO들의 실패 사례를 익히 알고 있던 웨버는 몇 달 동안 분 단위로 계획을 세웠다. 3만명의 직원 중 누구를 만날지 정리하고 회사의 어느 곳을 방문할지 표로 만들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다케다는 매우 오랜 역사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라며 “다케다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다는 확신을 직원들에게 줘야 했다”고 말했다.
“일본적 가치 위에서 글로벌화 추진”
다케다의 실적 부진은 웨버 CEO가 짊어진 또 다른 부담이었다. 그가 COO로 취임하기 직전 다케다는 미국 법원에서 60억달러(약 6조5600억원)의 벌금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다. 미국에서 자사 당뇨병 치료제인 액토스의 발암 위험성을 숨겼다는 혐의였다. 잠재 손실액은 40억달러(약 4조7344억원)에 달했다. 영업이익은 몇 년째 감소하고 있었다.
웨버 CEO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회사는 매우 파편화돼 있었다”며 “지금은 회사를 기초부터 다시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용 절감을 위해 기존 4개이던 생산 유닛을 1개로 합쳤다. 6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던 연구개발(R&D) 분야를 중추신경계질환, 대사성·순환기질환, 소화기질환, 종양의 4개 질환 부문으로 재편성했다.
백신과 제네릭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제네릭은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의 특허 기간이 끝난 뒤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성분, 함량 등을 유지해 복제약을 만드는 사업이다.
그는 하세가와 회장의 기조를 이어받아 다케다의 글로벌화에도 적극적이다. 일본 내부에서 밖으로 시선을 돌려 아시아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북아시아 판매조직과 이머징마켓 판매조직을 통합하고 거점을 싱가포르에 두기로 했다. 2013년 19%이던 신흥국의 매출 비중을 2017년 25%로 올리겠다는 목표다.
다케다가 지켜온 가치 위에서 글로벌화를 추진하겠다는 점도 강조한다. 지난해 11월 재팬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다케다가 가지고 있는 일본적인 가치를 존중한다”며 “일본이라는 토대 위에서 다케다가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웨버 CEO가 다케다에 몸담은 지 1년 남짓. 두각을 드러내기엔 짧은 시간이지만 현재까지 그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우루시하라 료이치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그가 처음 CEO로 선임될 때는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며 “다케다의 기업 구조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던 만큼 회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웨버 CEO가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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