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보건대 피부미용과 졸)
"미용학원과 4년제대 사이…균형잡힌 효율성이 전문대 강점"
“8년 전 웰라 인터내셔널 트렌드비전 어워드 우승 후에 사실 좀 서운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회거든요. 국위 선양이고 국내 최초 수상이었는데 관심이 그렇게 크진 않았어요. ‘아, 우리 업계가 아직 이 정도구나’ 했죠.”
상아 원장(사진)은 인터뷰 말미에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당시 그는 준오헤어 팀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때문에 회사가 좀 더 부각된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업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98학번인 그보다 더 윗세대는 미용학원이나 직업학교 출신이 대다수였다. 30대 중후반인 상아 원장 또래가 전문적 교육과정을 거쳐 ‘헤어디자이너’가 된 첫 세대인 셈. 지금은 4년제대에도 여럿 관련 학과가 생겼다.
모교인 동남보건대 외래교수로 후배들에게 강의도 하고 있는 상아 원장은 “2년 과정을 4년까지 늘릴 필요 있을까. 기본을 갖춘 뒤엔 빨리 업계 실무 경력을 쌓는 게 중요하다”면서 “효율성 면에선 전문대가 균형감 있다고 본다. 디자이 歌?된 후 자신의 숍을 열 때 경영을 전공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필요성을 느끼면 추가로 공부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 자신도 업계에 입문한 지 이미 17~18년이 지났다. 작년엔 서울 삼성동에 개인 브랜드 S★A헤어살롱의 문을 열었다.
‘S★A’란 이름은 자신의 예명을 땄다. 스페셜 아티스트의 약자이기도 하다. 가운데의 별은 우승할 때마다 별 개수가 추가되는 프로스포츠팀 유니폼을 벤치마킹했다. 1호점을 기념해 형상화한 것이다. 자신과 고객이 별처럼 빛나길 기원하는 의미도 담았다. “1호점이니까 별 하나죠. 2호점, 3호점 열 때마다 별 개수는 늘어날 겁니다.”
- 언제부터 헤어 쪽에 관심을 가졌나.
“그때가 고3 1학기였다. 진로 결정을 못하고 고민 중이었다. 막연히 디자인 쪽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동네 미용실 원장님에게 얘기를 들었다. 헤어 쪽 전공하는 대학이 있다고. 난 전혀 몰랐었다.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있더라. 관심이 생겨서 그때부터 목표로 잡고 공부했다.”
- 당시엔 헤어 관련 전공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텐데.
“전국에 세 군데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중 두 곳은 여대였고. 내가 유일하게 갈 수 있는 동남보건대 미용과가 목표가 됐다. 원래 손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목표를 세우니 수능 점수도 오르더라. 고1 때 미술선생님은 미대 진학을 권했다. 그런데 미술을 잘할 순 있어도 좋아하지는 못할 것 같은 거다. 헤어디자이너는 달랐다. 내게 잘 맞을 것 같았다.”
- 동네 미용실 원장님이 은사나 다름없겠다.
“그런 셈이다. 그 원장님 만나기 전엔 머리를 해도 늘 마음에 안 들었다. 만화책 들고 가서 이렇게 머리 해달라고 주문해도 잘 안 되더라. 내 생각엔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쌓여서 헤어디자이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분과 잘 맞았다. 해외 잡지에 나온 트렌드도 많이 알려줬고. 무엇보다 꿈을 많이 보여줬다.”
-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98학번인데 사실 1997년 겨울부터 미용을 배우면서 일했다. 시작은 동네 원장님 밑에서 이것저것 배우면서부터다. (웃음) 학교 다닐 때도 일을 계속했다. 디자이너 승급 앞두고는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휴학하기도 했다. 정상적 코스는 아니지만 사회생활을 병행했다. 하루라도 빨리 일하고 싶더라. 덕분에 학교 졸업할 땐 이미 디자이너가 돼 있었다.”
- 일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원장님이 좀 더 큰 곳에서 일하는 게 좋을 거라며 다른 곳에 추천해줬다. 군 복무 후 휴학 중인 때였다. 그래서인지 압구정 쪽 면접은 떨어졌다. 복학해야 하니 몇 개월 일할 것으로 본 모양이다. 다행히 명동(준오헤어)에선 받아줘 입사했다. 난 일 욕심은 많았지만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수업일수만 맞춰놓고 나머지는 학교 수업보다는 일을 했으니까.”
- 현장 실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가.
“수업 시간에 배운 걸 현장에 바로바로 적용하니 재미있더라. 2년 학교생활에 군 생활과 승급 준비로 두 차례나 휴학 했다. 학교를 오래 다녀서 오히려 아는 선후배가 많다. (웃음) 내가 학과 3기니까 학교 선배들은 어디서나 원장급이고 후배들 중 수석디자이너급도 꽤 된다. 우리보다 윗세대는 미용학원이나 직업학교 출신이다. 내 또래가 사실상 전문교육을 받고 헤어디자이너가 된 첫 세대인 셈이다.”
- 준오헤어에서 오래 일했다. 언제 숍을 냈나.
“작년 5월5일 여기(삼성동)에 문을 열었다. 디자이너 명함을 갖게 된 지 딱 11년 되는 날이었다. 내가 일을 시작할 무렵엔 압구정과 명동이 소위 머리 잘하는 ‘핫플레이스’였다. 이화여대, 성신여대 쪽도 강세였고. 그러다 청담동을 비롯한 이쪽으로 트렌드가 옮겨왔다. 준오헤어에서 명동과 압구정을 거쳐 청담동에서 일하다 개인 브랜드를 론칭했다.”
- 강의도 나가고 있다고.
“모교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실습 위주로 강의한다. 추천받은 후배 한 명은 현장실습 하다가 곧바로 우리 숍에 취업하기도 했다. 내가 다닐 땐 미용과였는데 지금은 피부미용과가 되면서 헤어보다 피부전공 학생이 많아졌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헤어 외에 메이크업, 스킨케어까지 배울 수 있는 건 장점이다.”
- 최근엔 4년제에도 관련 학과가 많이 생겼다. 어떻게 보는지.
“사실 난 미용학원도 나왔다. 4개월(600시간) 과정이면 기술적 부분은 웬만큼 익힐 수 있다. 자격증도 딸 수 있고. 하지만 미용학원보다는 전문대에서 좀 더 폭넓은 내용을 배운다. 헤어디자인이 단순히 머리만 깎는 건 아니지 않나. 고객과 소통하고 전문 주제로 대화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아무래도 심도 있는 내용을 전문대에서 배우는데 그럴 때 도움이 많이 된다.
4년제는 다니지 않았지만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전문대 커리큘럼 정도가 적당한 듯싶다. 2년제를 늘려 4년제로 배우는 건 효율성 면에서 떨어진다. 차라리 일찍 현장 실무 경력을 쌓거나 해외 유학을 다녀오는 게 좋지 않을까. 학교에서 기초지식을 익혀 하루라도 빨리 업계에 발을 들이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 본다.”
- 4년제대 얘기는 좀 다르다. 인문학 소양 등을 쌓을 필요가 있다는데.
“물론 4년제와 차이가 있겠지. 하지만 시간 투자 대비 성과를 보면 그게 효율성이 높다는 거다. 누가 물어봐도 그렇게 답하곤 한다. 전문대 입학해 열심히 배우고 잘 맞는 헤어숍에 가거나, 롤모델인 디자이너 밑에서 일 배워나가는 게 이상적 코스라 생각한다. 4년제 졸업 후 대학원 가는 게 교수가 되기엔 좀 더 빠를 수 있겠다. 다만 전문적인 현장 노하우는 부족하지 않을까. 미용 분야는 실무가 중요한데 막상 현장에 어두운 교수가 얼마나 의미 있을까 싶다.”
- 실제로 전문대졸이지만 교수를 하고 있지 않나.
“2007년 웰라 인터내셔널 트렌드비전 어워드에서 우승했다. 전세계 56개국 국내대회 1위만 나와서 실력을 겨루는 대회였다. 웰라가 주최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회다. 거기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1위를 했다. 날 제외하면 국내 디자이너들은 지금까지 우승은 물론이고 입상권에도 못 들었다.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교수(외래교수)로 부른 거라고 생각한다.”
- 현장, 그리고 실 쩜?최우선이란 얘기로 들린다.
“중요한 건 업계 실무다. 스태프 생활이 결코 녹록치 않다. 빨리 익힐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나중에 더 할 수도 있다. 나도 미용 쪽보다는 경영이라든지 필요한 부분을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처음부터 4년을 몰아 투자하기보다는 어느정도 경험을 쌓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개념이 낫지 않겠나.”
- 후배나 제자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많이 변했다. 예전엔 정말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임금도 많이 올랐고 근무시간도 단축됐다. 주5일제 근무 숍도 늘어났다. 한가할 땐 앉아 쉬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상당히 바뀐 거다. 보다 적게 일하고 수입은 많았으면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너무 이것저것 보고 조건만 따지는 건 스스로에게 도움이 안 된다.”
- 꿈에 집중하라는 거구나.
“일을 좀 더 이해하려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임했으면 한다. 환경이나 조건보다는 자기와 잘 맞는 디자이너를 알아봐 열심히 일을 배워라. 미래의 원장, 디자이너가 된 스스로를 떠올리면서 앞만 보고 달려갈 필요도 있다. 나도 일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때 포기했으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 말을 해주고 싶다.”
◆ 나에게 전문대란…
전문대가 아니었다면 미용을 안했을지도 모른다. 내겐 정말 필요한 존재였다. 사회와 О溯쳔객?매개체 역할을 해줬다. 꿈을 키우는 곳이자 편하고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었던 곳이었다. 고교 졸업하고 바로 현장으로 가면 그런 기억이 없지 않나. 많은 사람들을 얻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아내도 학교 동기로 만났다. 캠퍼스커플이었다가 배우자가 돼 지금은 함께 일하고 있다.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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