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번복하고, 늑장 공시 단골
스틸앤리소시즈 유상증자 취소…건물 압류 소식도 뒤늦게 알려
영진코퍼는 10차례 정정공시…주가 급락에 투자자들 손해
벌점 15점 넘으면 관리종목 지정…거래소 "모니터링으로 솎아낸다"
[ 심은지 기자 ]
휴대폰 부품 및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업체 엘컴텍은 2012년 8월 몽골에 있는 자원개발 자회사 AGM마이닝 지분을 300억원에 팔겠다고 공시했다. 이 자금으로 부채를 상환하고 주력인 정보기술(IT)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매수인이 잔금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엘컴텍은 지난 10일까지 총 일곱 번에 걸쳐 정정공시를 냈다. 최초 공시 이후 2년6개월 만인 지난 6일엔 주식매도 계약을 해지한다고 정정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엘컴텍을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 예고했다.
◆공시 번복·늑장 공시 단골손님
공시 내용을 수시로 바꿔 투자자들의 신뢰를 까먹는 ‘상습 정정공시’가 잇따르고 있다. 유상증자, 자회사 매각 등 주요 경영사항을 번복하는 세칭 ‘피노키오주’가 늘면서 공시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만 혼란을 겪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인 금속재생업체 스틸앤리소시즈는 잦은 공시 번복으로 한국거래소로부터 올 들어서만 12.5점의 벌점을 받았다. 하루 매매정지 조치가 취해지는 15점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돌연 취소한 데 이어 회사 건물 압류 소식도 즉각 공시하지 않았다. 공시 불이행과 늑장 공시가 반복되는 동안 주가는 2013년 말 주당 994원에서 지난해 말 453원으로 반 토막 났다. 올 들어서도 10% 가까이 주가가 빠졌다.
피혁 제조업체 유니켐도 지난 1년간 유상증자 및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된 공시만 14차례 정정했다. 이 회사는 대체금 연체 사실도 바로 공시하지 않았다. 유니켐이 지난해 공시 불이행에 따라 부과받은 벌점은 60점에 달한다. 2013년 말 2362원이던 유니켐 주가는 1년 새 75% 이상 떨어졌다.
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공시 번복으로 3회 이상 제재를 받은 불성실 공시법인은 스틸앤리소시즈, 유니켐, 승화프리텍, 영진코퍼레이션, 디지텍시스템 등 5곳이다. 이 가운데 유니켐을 제외한 4개 업체가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다.
영업환경 변화나 계약내용 변경 등으로 정정공시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잦은 정정공시가 재무 악화의 징후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자주 공시내용을 바꾸는 회사에 대해선 재무구조, 경영상황 등을 더욱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 “상습 기업 솎아내야”
거래소는 공시 번복이 잦은 상장사를 골라내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중요도에 따라 벌점을 누적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15점을 넘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하고 하루 매매거래를 중단시킨다. 이후 1년간 15점을 추가로 받으면 상장적격성 심사를 한다. 하지만 공시 번복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데다 벌점을 받더라도 이미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작년엔 코스닥시장에서만 41개사가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김용상 거래소 공시부장은 “상습적으로 공시를 위반하는 상장사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공시서류 사전확인절차 면제 제도 등 자율감시 시스템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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