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권의 증세론을 정면 비판한 것을 두고 말들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복지를 공고히 할 방안을 찾는 것”이라며 “이를 외면한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가 부족하니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고 하면 그게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소리냐”며 작심한 듯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답답하고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읽힌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는 정부가 작년부터 그렇게 읍소했던 경제활성화 법안들을 손도 안 댄 채 고스란히 쌓아놓고 있다. 경제살리기를 외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박 대통령이 어제 당청회의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국회 협조가 절실하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이런 대통령의 역정이 다소는 의외라는 것도 솔직한 느낌이다. 국회에 계류된 법안 몇 개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보는 경제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동안 경제민주화 소동 속에서 쏟아져 나온 경제 규제법들이 수두룩하다. 정부조차 소위 경제민주화 법안들을 아직도 추진 중이다. 기업할 의지를 꺾고 경제를 가라앉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는 여야 가리지 않았던 반기업 정서와 경제할 자유에 대한 정부의 무차별적인 개입주의다.
이러는 사이에 ‘증세 없는 복지’의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보육도 돈이 없어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판이다. 지금의 복지수준만 유지하는 데도 재정이 감당 못 한다는 경고가 줄을 잇는다. 엊그제 보건사회연구원은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비중이 지난해 10.4%에서 2035년엔 18.8%로 두 배 가까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2050년엔 25.6%, 2060년엔 27.8%로 불어날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 직속 사회보장위원회의 전망도 다르지 않다. 이미 증세 없는 복지를 위해 짜맞췄던 135조원의 공약가계부는 금이 갔다. 비과세·감면 축소는 연말정산 소동을 거치며 사실상 끝장났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확대 역시 지난해 목표보다 11조원이나 적게 들어온 세수 성적표로 공염불이 됐다. 아무리 기획재정부 전문가들이 개정판 공약가계부를 억지로 짜맞추더라도 불가능한 숫자다.
정치권도 말할 게 없다. 솔직히 증세는 싫고 복지는 늘려달라는 게 여론이다. 여론의 이중성은 대중민주주의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여론 앞에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무상, 무상만을 외치다가 무상복지가 중단될 지경까지 왔는데도 반성 한마디 없이 대통령만 공격하고 있다. 해결책은 오로지 법인세 인상, 부자증세뿐이라는 허구의 논리를 펴고 있을 뿐이다. 새누리당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대한민국이 증세냐 복지 축소냐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선택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내 탓,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정작 기업 매출은 줄어드는데 임금도 일자리도 늘리고, 세금도 더 내라는 공허한 구호만 요란하다. 제 할 일을 남 일로 여긴다. 부끄러운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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