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야 대표로 이승만·박정희 묘역 첫 참배했지만
최고위원 5명 모두 거부·불참…정청래·김광진 등 거센 반발
이상민 등은 "진전된 행보"…문재인호 시작부터 험로 예고
[ 손성태 기자 ]
제1야당 사령탑에 오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9일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새정치연합과 이전 옛 민주당 대표로는 처음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참배했다.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 현충원 방문록에 남긴 글처럼 그의 참배는 둘로 쪼개진 정치 진영에 대한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의도라고 측근들은 말했다. 3년 전 대통령 후보 시절 거부했던 문 대표의 이날 참배는 거센 당내 반발을 불렀다.
현충원을 찾은 전·현직 지도부 중 문 대표와 문희상 전 비상대책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 송호창, 윤후덕, 김성곤 의원 등 6명만이 이·박 두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찾았다. 전날 지도부에 입성한 5명의 최고위원이 거부하거나 불참하면서 이날 참배는 결국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재인호(號)’가 시작부터 암초와 맞닥뜨리면서 험로가 예상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참배에 반대한 정청래 최고위원은 “민주주의 말살, 대선 부정을 저지른 정권에서 사과와 반성이 없는데 또 하나의 박근혜라 할 수 있는 박정희 묘소를 참배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대선을 준비하는 문 대표로선 참배할 수 있지만 첫 일정으로 잡는 것은 당원 자존심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표가 “문 전 비대위원장이 이미 일정을 잡아놓았다”고 말하며 참배를 강행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김광진 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문 전 비대위원장이 정해둔 일정이니 따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문 전 비대위원장은 분명히 전직 대통령 참배는 신임 지도부의 몫이라 했다”고 말했다. 대표 경선에 나섰던 이인영 의원도 현충원을 찾았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며 참배엔 거부 반응을 나타냈다. 전날 간담회에서 묘소 참배에 거부 의사를 밝힌 유승희 최고위원은 현충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반해 중도 성향의 이상민 의원은 “금기시했고 꺼렸던 두 전직 대통령 묘소 참배를 하겠다는 건 포용적이고 화합적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라며 “당 대표가 가겠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진전된 행보”라고 평가했다.
안철수 전 대표도 새 지도부에 협력하겠다는 뜻으로 두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예정이었으나 지도부만 참배키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측근인 송호창 의원만 대신 보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대승적으로 진영논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문 대표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화합 통합의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긴 했지만, 문 대표가 처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친노(친노무현)에 대한 거부감을 눈으로 확인한 데다 3.52%포인트 차이로 신승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날 당내 반발에 부딪히자 효창공원에 안치된 백범 김구기념관과 안중근 가묘의 참배 일정을 부랴부랴 잡은 것은 잠복한 계파 갈등과 불안한 문 대표의 당내 입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지적이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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