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원하는 건 다 줘라"
임금 인상·의료보험 확대 등
집권 때마다 '무한 퍼주기'
稅收 외면하고 복지에 펑펑
[ 노경목 기자 ] 지난 달 25일 그리스 아테네대 앞은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총선 승리를 축하하는 군중의 환호로 가득했다. 특유의 넥타이 없는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는 상기된 표정으로 주먹 쥔 손을 들어 보였다. 같은 시간 아테네대에서 4㎞ 떨어진 신민당 당사는 침울한 분위기에 빠졌다. 신민당 대표인 안토니스 사마라스 전 총리는 “정부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고 일부 실수도 했다”며 취재기자와 당직자들 앞에서 선거 패배를 인정했다. 1974년 군부독재 종식 이후 41년간 지속된 신민당과 사회당의 양당 체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두 당은 경쟁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해 재정위기를 초래했고, 구제금융이 시작된 2010년 이후에도 긴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앞에 우왕좌왕했다. 책임감 없는 정치세력이 어떻게 국가 전체를 불행하게 하고 스스로 몰락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집권 위한 복지 경쟁
신민당 ?사회당은 1974년 나란히 창당했다. 정치적 색깔을 보면 신민당은 중도 우파, 사회당은 중도 좌파다. 신민당은 창당한 그해 집권에 성공했고 이후 사회당과 정권을 주고받으며 15년간 집권했다. 사회당은 1981년 정권 교체에 성공해 처음 집권했고, 이후 정부를 구성한 기간은 22년이다. 2012년 총선에서 과반을 얻는 데 실패한 두 당은 신민당 주도의 연립정부를 구성해 시리자에 정권을 넘겨줄 때까지 그리스를 이끌어 왔다.
그리스의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은 1981년 사회당 집권과 함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재정위기 당시 총리였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의 아버지)가 총리가 되면서 시작됐다. 취임 직후 그는 각료들에게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고 지시했다. 평균임금과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고 의료보험을 전 계층으로 확대했다. 이 같은 정책은 사회당의 8년 집권으로 이어졌지만 1970년대 연평균 4.7%였던 그리스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5% 수준으로 떨어졌다. 집권 전 국내총생산(GDP)의 28%였던 국가부채 비율은 80%까지 뛰었다.
표 떨어진다…세금 인상은 미뤄
200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가입한 이후에도 씀씀이가 커졌다. 신민당이 집권한 2004년부터 5년간 그리스 공무원은 5만명이 늘었고 이들은 매년 5% 이상의 임금 인상을 보장받았다. 인구 1100만명인 그리스에서 공무원은 98만명까지 불어났다. 산업 기반이 취약한 그리스에서 국가가 정부 재정으로 고용률을 높이다 보니 나타난 결과다. 효율성도 형편없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업무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거나 쇼핑을 해도 그리스 공무원에게 ?제재가 가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돈을 펑펑 써댔지만 그리스의 조세부담률(GDP 대비 세수 비중)은 2011년 기준 20.4%로 한국(24.3%)보다 낮았다. 세금을 걷는 것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양당이 세금 인상을 미룬 탓이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국민 1인당 평균 세금납부액 8300유로보다 1.3배 많은 1만600유로를 각종 복지 비용으로 지출했다. 국가가 국민 한 사람당 2300유로(약 251만원)씩의 적자를 보고 있었던 셈이다. 재정적자가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회원국에 GDP 대비 3%의 재정적자를 요구하는 유럽연합(EU)에는 실제와 다른 수치를 제공했다. 국가가 분식회계를 한 것이다.
표 얻으려 선거 때면 “긴축 반대”
재정위기 이후에도 사회당과 신민당 지도자들은 경제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설득하기는커녕 긴축에 공공연히 반대했다. 1차 구제금융이 소진된 2011년 11월 추가 구제금융 제공의 조건으로 긴축정책을 요구하는 ‘트로이카(EU,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에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긴축 여부는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곧장 국채 2년물 금리가 연 117.5%까지 치솟으며 그리스 경제가 파국 직전까지 내몰렸다.
결국 의회의 불신임으로 총리에서 물러난 파판드레우는 이후에도 긴축정책의 발목을 잡았다. 이듬해 연립정부에서 당시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가 연금을 15%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복지정책 축소안을 내놓자 사회당과 함께 반대했다.
연정을 주도했던 사마라스 전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신민당 대표 시절인 2012년 5월 총선에 임하며 긴축을 반대한 것은 물론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증세 대신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마라스 총리는 집권 이후 2013년 민간부문 임금을 16% 삭감하는 등 구조조정과 긴축에 나섰다. 이전의 긴축반대 주장은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이 됐다. 표를 위해 공약을 남발한 정치인의 리더십을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지난 25일 신민당의 총선 패배로 나타났다.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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