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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官治보육을 접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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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정책에 부실 어린이집만 난립
보육료 등 규제로 서비스질은 저하
誘因만 주고 당사자 결정에 맡겨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퍽, 꽈당!’ 비록 TV 뉴스에서는 소리 없이 때리는 장면만 나왔지만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충격이었다. 어떻게 어린아이 뺨을 그렇게 세게 후려칠 수 있을까.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폭행 모습에 한동안 말이 안 나왔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보육교사가 됐나. 전국적으로 분노가 일었다. 정부는 즉각 폐쇄회로TV(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어린이집에 대한 관리 감독을 더욱 더 철저히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으레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자의 도덕성을 따지고 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으로 대응한다. 물론 보육교사가 백번 잘못했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며,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보육교사의 도덕성을 탓하고 어린이집들을 관리 감독한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린이집 사건의 본질은 정부의 관치보육에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무상보육정책’의 전면 시행과 함께 민간 어린이집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보육료 상한제를 통해 보육료를 讀┎煞? 과도한 업무를 조장하는 평가인증제를 도입했으며, 비현실적 회계규칙을 강요했다. 이런 규제는 민간 어린이집의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당연히 어린이집 교사는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에 시달렸다. 제대로 된 아이 돌봄을 기대하는 것은 그저 바람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육교사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사명감과 도덕심을 갖고 일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가혹하다.

우리는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의 공장에서 얼마나 조악한 제품이 나오는지 익히 보아서 알고 있다. 지금 한국의 보육이 그렇다. 사회주의 국가의 공장들처럼 어린이집 보육 서비스는 획일적이며, 부모가 만족할 만한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무상보육정책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았다. 만 5세 이하 모두에게 보육료 전액을 지원하니 ‘안 보내면 손해’라는 심정으로 너도나도 아이를 보냈다. 그런 수요에 대응해 부실한 어린이집이 난립했다. 보육료라도 제대로 받게 했으면 그런 수요가 조절됐을 텐데 그리하지 못해 사건이 터진 것이다.

세상엔 공짜란 없다. 말이 무상보육이지 사실상 그것은 국민들의 세금이다. 자녀가 없는 사람은 보육에 관심도 없고 거기에 지출할 의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보육을 무상으로 제공하면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자녀를 위해 지출하는 꼴이 된다. 자녀가 없는 사람 중에는 소득이 낮은 사람도 포함돼 있다. 가난한 사람이 중산층 혹은 고소득층 아이들의 보육비를 보조하는 꼴이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임마누엘 칸트는 “어느 한 행동이 도덕적이려면 그것이 보편화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행동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무상보육정책과 같은 소득재분배정책은 도덕적이지 않다. 이 정책이 어떤 사람을 지원하는 데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바람직한 일을 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인(誘因)을 주는 것이다. 아주 좋은 실례가 있다. 1860년대 영국이 배를 이용해 수많은 죄수들을 호주로 이송했는데, 그 생존율이 40%를 넘지 못했다. 아무리 도덕적 견지에서 죄수들을 인간적으로 잘 대우해 달라고 선장들에게 호소해도 소용이 없었다. 선장들의 유인을 변화시켜 영국에서가 아니라 호주 항구에 도착하는 죄수의 수에 따라 이송료를 지급하자 생존율이 즉각 98%를 넘어갔다. 선장들이 적정 인원만 태우고 죄수들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하며 위생시설을 잘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보육교사의 자질과 도덕성을 강조하고 정부가 어린이집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도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는 언젠가 어린이집 사건은 또 발생할 것이다. 정말로 우리가 바라는 어린이 보육을 원한다면 관치보육을 접고 보육문제의 당사자들인 어린이집과 부모에게 맡겨라. 그것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열쇠요, 바람직한 보육정책이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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