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醫 인터뷰
개원 30주년 맞은 서울대 어린이병원 김석화 원장
하루 외래환자 1200명 넘지만 2013년 적자만 200억원
어린이 세심한 검사·진료로 인력·시간 3~4배 더 필요…高비용 누적된 결과
어린이병원 건립비용은 정부가 지원하지만 운영은 알아서
국제학술심포지엄 개최 등으로 미래 30년 대비할 것
[ 이준혁 기자 ] 1985년 10월16일, 당시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최초의 어린이 전문 대학병원으로 문을 연 서울대 어린이병원(원장 김석화)이 올해로 개원 3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서울대 어린이병원은 각종 중증·희귀질환으로부터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켜내는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어린이 전문병원의 효시인 셈이다. 사실 대부분 대형 병원은 적자를 낼 것이 뻔한 어린이병원 운영을 기피한다. 국내 내로라하는 대형 병원에 어린이병원이 없는 이유다. 하지만 국가 중추 의료기관으로 서울대병원은 어린이병원을 개설, 중증 소아환자를 위한 헌신적인 전문 치료 기관으로 그 역할을 다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석화 서울대 어린이병원장을 만나 현황과 어려움, 발전 방안을 들어봤다.
▷지금도 어린이 종합병원은 드문데, 30년 전에 어린이병원을 개원한 목적은 뭔가요.
“의료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린이·청소년 질환에 관한 전문적인 진료와 교육·연구 기능을 전담하는 국내 최초의 전문 의료기관으로서 뚜렷한 목적과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국가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요. 1985년 개원 기념식 때 당시 손제석 문교부 장관의 치사가 이 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린이병원 개원은 우리나라 의료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국민적인 의지와 단합을 통해 선진국으로 비약하고 있는 우리의 경제적 기반을 토대로, 어린이 질환에 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기반을 다짐으로써 서울대병원이 명실상부한 국가의 병원, 민족의 병원, 세계의 병원으로 나아가 줄 것을 말씀하셨지요. 민족의 내일을 여는 병원이라고 강조한 말이 지금도 가슴에 와닿습니다.”
▷어린이병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십시오.
“현재 300실이 넘는 일반 병상을 보유하고 있고요. 신생아·소아 중환자실, 소아수술실, 소아응급실, 소아정신병동 등 어린이 질환을 진료하는 데 필요한 독립적인 시설과 조직 등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의뢰하는 각종 중증·희귀 난치성질환 어린이들을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습니다. 70여명의 어린이질환 전문 교수진과 100여명의 전임의·전공의, 400여명의 간호사 등 총 800여명의 인력이 연간 31만명의 외래환자와 10만명이 넘는 입원환자를 진료하고 있고 매년 1만건이 넘는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환자 중심의 전문센터가 활성화돼 있습니다.
“어린이병원에는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해 소아외과 등 모든 외과계 소아분과를 두고 있습니다. 특히 저희 병원은 철저히 환자 중심의 맞춤형 치료에 중점을 둡니다. 일례로 국내 다른 병원에서는 보기 힘든 희귀질환센터, 소아암센터, 선천성심장병센터, 소아뇌신경센터, 신생아집중치료센터, 소아장기이식센터, 소아콩팥병센터, 소아안센터, 인공와우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루 외래환자가 1200명이 넘지요. 병실과 외래진료실을 보면 늘 아픈 어린이들로 북적이고요. 그런데도 적자라니 뜻밖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입니다만 2013년 한 해 적자가 거의 200억원이나 됐습니다. 언뜻 이해가 쉽지 않을 텐데요. 어떤 시술을 어린이에게 할 경우 인력과 시간이 어른에 비해 훨씬 많이 필요합니다. 통상 3~4배 이상의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건강보험수가는 이런 차이와 어려운 특수성을 충분히 인정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례를 들어 말씀드리면 서울대 어린이병원은 어린이를 위한 미세검사를 시행하는 소아진단검사의학과를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2㎏ 정도 몸무게인 신생아가 중증질환을 앓고 있을 때 더 상세하고 정확한 혈액검사 모니터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혈액 채취 과정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만약 성인과 동일하게 혈액검사를 위해 10~20cc의 혈액검사를 시행하면 아기는 검사만으로도 실혈량이 많아져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극소량의 혈액으로 동시에 여러 미세검사들을 시행함으로써 아기의 안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인력이 더 필요하지만 검사 수가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세심한 검사나 진료 과정이 모두 고비용인 셈인데, 이런 부분이 누적돼 적자폭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소아에 대한 수술이나 시술도 어른보다 의료진이나 간호 인력이 더 필요합니다. 장비 회전율도 낮지요.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진료를 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금 어린이병원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입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정책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겠군요.
“저희 병원을 비롯해서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는 국립대병원의 공통된 고민입니다. 건립 비용은 정부에서 지원하지만 건립 이후 운영에 대한 지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병원이 250여개나 있는 미국의 경우 어린이병원 지원을 목적으로 공채를 발행해 그 수익금으로 병원 운영 및 전공의 수련비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어린이병원의 적정 운영을 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정부의 제도적 지원입니다. 모자보건법이나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어린이병원을 지정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지원 대상인 어린이병원의 진료 수준 평가 기준과 재정 지원 근거 조항 등을 마련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병원에 내재한 본질적인 공공성에 비춰 정부 주도의 의료공급체계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통해 어린이병원의 전문인력, 의료장비, 연구 등에 대한 투자가 이뤄질 때 비로소 어린이에 대한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이 가능해집니다.”
▷여러 구조적인 어려움에도 새로운 30년에 대비한 방안을 고민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올해는 어린이병원이 개원한 지 30년이 되는 해로 어린이 의료를 선도하고 어린이병원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해 어린이 보건의료정책 포럼과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진료센터 활성화, 병상 운영 개선, 소아중증환자 대상 정보교육센터 신설 등 자체적인 노력을 강구할 계획입니다. 또한 대내외 소통을 강화하고 정부와의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해 국가중앙병원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구조적인 적자 누적이 병원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 저희가 꿈꾸는 어린이 의료의 세계 선도병원 도약은 요원한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어린이 진료 수가의 현실화 및 공공성을 기할 수 있는 수준의 국가적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합니다.”
김석화 서울대 어린이병원장은 197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87년부터 서울대 의대 및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구순구개열, 귀성형, 두개안면기형 등 소아성형 분야 전공으로 한국생체재료학회장, 국제성형재건미용학회 집행위원, 환자안전연구회장, 대한의료정보학회 이사장, 대한성형외과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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