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현철 기자 ] ◆ 수도권 규제와 국토균형발전
박근혜 대통령이 수도권 규제 완화와 관련해 “종합적인 국토정책 차원에서 의견을 수렴해 연내에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12일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규제는 덩어리 규제로 아주 관심이 큰 규제인데, 지난해 조금씩 해서는 안 되니 과감하게 풀자고 해서 규제 단두대에 올라온 과제”라며 이같이 방침을 밝혔다. 박 대통령이 연내 해결 의지를 보임에 따라 규제 완화 추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 1월12일자 한국경제신문
☞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수도권 규제 연내 해결을 들고 나왔다.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수도권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기업들이 그동안 애타게 원했던 사항이기도 하다. 수도권 규제란 무엇이고 왜 이처럼 이슈가 되는 것일까?
수도권엔 공장 짓고 싶어도 사실상 불가능
경기 광주시 곤지암의 빙그레 공장. 스낵 유제품 등을 생산하는 이 공장 부지는 5만㎡가 넘는다. 하지만 라면 공장으로 쓰던 건물은 상자만 잔뜩 쌓인 채 14년째 텅 비어 있다. ‘매운콩라면’ 등을 생산하던 14년 전과 비교하면 완연히 쇠락한 모습이다. 1982년 설립된 이 공장이 활기를 잃은 것은 2001년 라면 생산을 중단하면서다.
당시 빙그레는 농심 삼양식품 등과의 경쟁 격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사업구조 재편이 불가피했다. 회사는 라면 라인을 뜯어낸 뒤 200억원을 추가로 투자, 땅을 더 사들여 라인을 확장한 후 치즈 등 다른 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과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이 문제였다. 수정법상 자연보전권역에는 공장면적이 6만㎡를 넘어서면 공장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빙그레가 새로 공장을 지으려면 5200㎡의 부지를 더 사야 하는데 이러면 6만㎡를 초과해 공장증설 허가가 안 나왔다. 빙그레는 백방으로 뛰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라면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이 바람에 직원 수는 당시 1000명에서 지금은 150명으로 급감했다. 매출도 연 1100억원에서 69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2001년 이후 광주 공장 전체의 생산직 신규 채용은 0(제로)이다.
수도권에 공장을 새로 짓거나 늘리고 싶은 기업이 적지 않지만 빙그레처럼 번번이 벽에 부딪힌다. 바로 수도권 규제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란?
수도권 규제는 서울과 그 인근 수도권에 인구와 경제력이 더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각종 행정조치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수도권에만 적용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한 권역별 규제다. 수도권은 33년 전 만들어진 이 법에 따라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 등 3개 권역으로 구분해 △대기업 공장 신·증설 금지 △대학 신·증설 금지 △공업용지 조성 등 대규모 개발사업 제한 △공장총량 등 공업입지 제한 등의 규제가 가해진다. 수도권 자연보전권역에서 6만㎡를 초과한 공업용지는 조성할 수 없다. 3만~6만㎡의 공업용지를 개발하려면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또 과밀권역에 일정 규모 이상의 업무용이나 판매용 건축물을 지으려면 과밀부담금을 내야 한다. 공장총량제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인천 경기 등 3개 광역시·도를 대상으로 3년마다 한 번씩 공장 신축면적을 총량으로 지역별로 설정하는 제도로 건축물 연면적이 500㎡ 이상인 공장이 규제 대상이다.
둘째는 개발제한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에 의한 규제다. 이 규제는 수도권뿐만 아니라 비수도권 지역에도 적용되는데 수도권이 특히 문제다. 비수도권에선 공장 설립 수요가 적거나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팔당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 한강 근처 수변구역, 상수원 보호구역 등에는 공장을 짓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군사시설 보호구역도 마찬가지다. 팔당호 특별대책지역 면적은 경기도 총면적 대비 20.6%, 수도권 개발제한구역은 경기도 면적 대비 11.6%나 차지한다.
이처럼 공장총량제에 묶여서 상수도 보호와 자연보호 때문에 기업들은 수도권에 공장을 새로 짓기는커녕 라인 하나 제대로 증설하지 못했다. 대학이나 연구소도 들어설 수 없었다. 수도권에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란 얘기다. 그렇다고 지방에 공장을 짓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생산과 연구개발(R&D)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물류비가 많이 들고, 인프라도 수도권보다 열악하다. 이러니 기업 입장에선 투자하고 싶어도 투자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수도권 공장 건설 제한이나 과밀부담금 부과와 같은 규제들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며 “새로운 외국인 투자가 안 들어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방은 반발
정부는 그동안의 규제완화가 큰 덩어리는 놔둔 채 지엽적인 것에만 매달려 별 효과가 없었다고 보고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올해 주요 경제정책 과제로 내세운 건 침체한 경기를 살리려면 기업들이 투자해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시급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투자가 늘어나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정부는 규제비용 총량제와 규제 기요틴 등 규제개혁 시스템을 정착시킬 방침이다. 규제비용 총량제는 규제가 신설 강화될 경우 기존 규제를 감축해 규제 총량을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규제 기요틴은 불합리적인 규제를 대규모로 한 번에 개선하는 개혁 방식이다.
과거에도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에서 수도권 규제를 풀어 서울은 해양과 대륙을 잇는 세계 금융·업무 중심도시로 발전시키고 인천은 물류와 정보기술(IT), 기흥·남양주는 비즈니스 중심지로 키우며, 인천~수원 사이에 첨단산업 벨트를 구축해 기술개발과 산업의 기지로 키운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도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의 산업단지에 있는 공장은 대·중소기업이나 업종에 관계없이 신·증설을 허용하는 등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개혁은 번번이 좌절됐다.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핵심 법이 온존한 상황에서 찔끔찔끔 규제 완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한 지방의원들의 반발도 거셌다. 이번에도 역시 지방과 지방에 근거를 둔 정치권의 반발을 어떻게 보듬을 수 있을지가 과제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포지티브섬 게임’
수도권 규제로 수도권에 공장 설립이나 증설이 어려워지자 많은 기업들은 지방으로 간 게 아니라 외국으로 나갔다. 중국과 베트남 등지로 생산거점을 옮겼다. 주인을 찾지 못해 텅 비어 있는 수많은 지방 산업단지가 이를 증명한다. ‘수도권 규제=지방 발전’이라는 환상에 빠져 더 늘어날 수 있었던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가 해외로 사라진 것이다.
수도권을 억제하면 지방이 발전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은 기업 엑소더스와 성장잠재력 하향을 낳았다. 그동안 수도권 규제는 ‘국가균형발전’이란 이름 아래 지방 발전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졌다. 수도권 규제를 풀면 지방 발전이 저해된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도권 규제를 일부라도 풀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면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광역단체가 반발했고, 역대 정부는 이게 무서워 규제완화를 외치면서도 수도권 규제만은 애써 외면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도 수도권 규제를 철폐한 지 오래다. 지방 균형을 강조해왔던 독일도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제 차별이나 역차별의 개념으로 수도권 규제를 인식할 때는 지났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한쪽이 이익을 보면 한쪽이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협력하면 둘 다 이득을 보는 ‘포지티브섬 게임’이다. 수도권이 발전해야 지방의 성장도 가능하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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