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타는 기분이 이런 걸까. 허리춤까지 빠지는 심설(沈雪)에서 스키를 타는 기분이 하늘을 날아갈 듯하다. 뽀송뽀송한 눈송이는 새털처럼 가볍다. 눈송이는 무릎을 치고 얼굴까지 뒤덮는다. 스키어들은 팔랑이는 낙엽처럼 가볍게 슬로프를 내려가며 파우더 스키의 진수를 즐긴다.
일본의 겨울엔 눈이 많이 내린다. 내려도 너무 많이 내린다. 그중에서도 홋카이도는 유별나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오호츠크해를 건너면서 힘껏 수분을 빨아들여 홋카이도에 전부 눈으로 부려놓는다. 이 눈들은 이듬해 봄이 올 때까지 녹지 않고 계속 쌓인다. 2월이면 키 큰 삼나무가 꼭지만 남을 만큼 많이 쌓인다. 이런 눈 속에서 타는 심설스키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동남아 여행자들이 즐겨찾는 루스쓰 스키장
루스쓰는 홋카이도의 눈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스키장이다. 삿포로에서 남쪽으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이 리조트는 홋카이도 최대 규모다. 스키장이 국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슬로프가 37개, 총연장은 42㎞나 된다. 리프트와 곤돌라는 모두 18기. 1시간에 3만2000명을 실어 나를 수 있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스키를 탈 수 있다.
각각의 정상은 슬로프와 리프트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마치 원숭이가 넝쿨을 타고 밀림을 넘나들 듯 스키어들은 슬로프와 리프트를 번갈아 타면서 스키장 구석구석을 누빌 수 있다.
루스쓰 스키장에는 모두 3개의 정상이 있다. 서쪽에 있는 웨스트 마운틴과 동쪽에 있는 이스트 마운틴, 이조라 마운틴은 곤돌라로 연결돼 있다. 곤돌라가 있어 어디서 스키를 타더라도 자유롭게 3개의 정상으로 오갈 수 있다.
호텔도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동쪽에 있는 타워호텔은 최근에 지어졌다. 2층에 있는 노천온천은 눈을 맞으며 온천욕을 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서쪽에 있는 호텔은 스키장 베이스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호텔과 스키장 사이에는 삼나무가 도열해 있는데, 겨울이면 루미나리에 장식을 해놔 환상적으로 빛난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동남아 여행자들은 밤에 이곳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뽑는다.
고운 떡가루 같은 파우더 설질
루스쓰의 자랑은 파우더 스키다. 워낙 적설량이 많기 때문에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대부분 파우더 스키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루쓰에 내리는 눈은 평균습도가 5%에 불과하다. 손으로 뭉쳐도 잘 뭉쳐지지 않을 정도로 건조한 눈이다. 눈이 많이 내려도 습도가 많으면 눈의 무게 때문에 스키가 잘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건조한 눈은 다르다. 고운 떡가루가 날리듯이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스키어들이 꿈꾸는 최상의 눈이다.
루스쓰의 자랑은 또 있다. 요테이산(1893m) 조망이다. ‘리틀 후지산’이라고도 불리는 요테이산은 원뿔형으로 치솟은 휴화산이다. 눈구름이 이 산에 막혀 루스쓰에 눈을 쏟아붓는다. 루스쓰에서 맑은 날 요테이산을 보면서 스키를 타는 기분은 황홀함 그 자체다. 이조라 마운틴에서 시작하는 헤븐리 코스에선 마치 요테이산을 향해 달려가듯이 스키를 타게 된다.
자연설에서 타본 경험 있어야 안전
루스쓰에선 1월 중순부터 스키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트리런(Tree Run)’을 즐길 수 있다. 트리런은 정해진 슬로프를 벗어나 자연에서 타는 스키다. 말 그대로 나무 사이로 스키를 탄다.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면서도 마치 대자연 속에서 스키를 타는 듯한 재미가 있다. 트리런 재미에 빠지면 일반 슬로프는 너무 싱겁고 밋밋하다.
트리런은 대개 적설량이 3m를 넘을 때부터 가능하다. 이때부터 잡목이 모두 눈에 파묻혀 스키를 타도 문제가 없다. 적설량이 부족하면 스키가 잡목에 걸려 위험하다. 트리런을 즐기려면 스키 실력이 상급 이상이어야 한다. 또 제설작업을 하지 않은 자연설에서 타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헬멧과 같은 안전장구를 갖추고 여럿이 같이 팀을 이뤄 도전하는 것이 좋다.
루스쓰에선 야간스키도 운영한다. 웨스트 마운틴의 경우 매일 정상을 개방한다. 운영하는 리프트는 한 가지지만 정상에서 내려오는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야간스키 개장시간은 오후 4시30분. 주간 스키가 끝남과 동시에 개장한다.
보통 일본으로 스키여행을 가면 도착 이튿날부터 스키를 타는데, 루스쓰에선 원하면 첫날 저녁에도 탈 수 있다.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다. 낮에만 스키를 타도 원없이 타다가 녹초가 되고 만다. 오후 3시만 되면 더 타라고 해도 대부분 알아서 스키를 접는다. ‘에프터 스키’로는 온천과 홋카이도가 자랑하는 맥주가 기다리고 있다. 노천탕에서 눈 맞으며 온천욕을 한 뒤 마시는 시원한 삿포로 맥주 한 잔! 이 맛에 홋카이도 스키여행을 간다.
여행팁
루스쓰리조트는 센치토세 공항에서 1시간 30분 거리다. 공항에서 스키장까지는 매일 버스가 운행한다. 리조트 내 호텔은 최근 지은 타워호텔과 웨스트 마운틴 구역의 호텔 등 2개가 있다. 객실은 모두 800실. 두 호텔은 모노레일을 타고 오갈 수 있다.
리조트 내에는 스키장 이외에도 부대시설이 많다. 72홀 규모의 골프장은 스키 다음으로 유명하다. 리조트 내에 테마파크를 방불케 하는 놀이공원이 있다. 또 웨스틴 마운틴에 자리한 호텔 1층에는 다양한 캐릭터 상점가가 입점해 있다. 노천온천은 타워호텔에만 있다. 뷔페, 프렌치 레스토랑, 일식, 이자카야(선술집) 등의 레스토랑이 있어 원하는 대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일본스키닷컴(ilbonski.com)은 3박4일과 4박5일 일정의 스키 패키지를 판매한다. 가격은 항공, 리조트~공항 송영버스, 리프트권, 식사(중식 제외) 등을 포함해 3박4일 88만5000원부터, 4박5일은 106만원부터. 02-753-0777
홋카이도=김산환 여행작가 mountainfire@hanmail.net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