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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리포트] 자동심장충격기 장식품으로 전락…1만5000대 보급, 예산 200억 '헛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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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심장충격기 관리 실태

도난 우려에 캐비닛에 넣어두고 손 안 닿는 곳에 설치하기도
심폐소생교육 적어 사용법 몰라…지자체 "유지비도 만만치 않아"



[ 오형주 기자 ]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유스호스텔. 지상 7층 건물 어디에서도 자동심장충격기(AED)를 찾아볼 수 없었다. “도난 우려 때문에 사무실 캐비닛에 보관하고 있다”는 게 직원의 말이다. 밤 12시 이후엔 근무하는 직원이 없어 투숙객 가운데 긴박한 심장질환이 생기면 응급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95개 객실에 33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숙박시설에 AED는 한 대뿐이었다.

심장질환 응급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난 5년간 약 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보급한 AED가 설치·관리 부실과 교육·홍보 부족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AED 사용 실적은 21건에 불과했다. 연간 2만5000여건의 심정지 사고가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면 1만5000대 이상 보급된 AED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백억원 들여 보급, 관리는 부실

AED는 환자에게 전기 자극을 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드는 응급의료기구다. 환자 심장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어 일반인도 손쉽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 있다. 2007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다중이용시설 등에 AED 설치가 의무화됐다. 현재 전국에 1만5000여대가 보급돼 있다. 정부와 시·도가 절반씩 투입한 예산은 206억원에 달한다.

복지부의 ‘AED관리운영지침’에 따르면 설치기관은 AED를 24시간 사용 가능하도록 비치하고, 일반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안내표시를 부착해야 한다. 또 의료 및 안전 관련 업무 종사자나 응급처치 교육을 수료한 관리책임자가 월 1회 이상 정기점검도 해야 한다.

그러나 본지가 서울시내 고속버스터미널과 주민센터, 경찰서 등에 설치된 AED를 살펴 봤더니 위급한 상황에 제대로 활용되기 어려운 사례가 많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고속버스터미널 대합실에 설치된 AED는 보관함이 굳게 잠겨 있어 일반인이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관악구 한 파출소의 AED 보관함은 바닥에서 2m 이상 높은 곳에 설치돼 있었고, 동작구의 한 주민센터에는 관리책임자가 인수 인계 없이 다른 동으로 옮겨 AED를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응급 상황에 대비해야 할 경찰 지구대에서조차 AED 보관함이 다른 물건의 받침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구청 1층 로비에 설치된 AED에는 관리책임자 표시와 점검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앞서 한국소비자원이 의무설치대상 120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AED가 설치된 51곳 중 관리책임자가 표시된 경우는 14곳(27.5%)이었다. 점검표는 12곳에, 안내표시는 2곳에만 부착돼 있었다.

AED 사용법 등에 대한 홍보도 부족하다. 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국민 중 68%는 AED를 본 적이 없다고 했고, 76%는 사용법을 모른다고 답했다. 지난해 10월7일 인천 동구의 사우나에서 갑자기 심정지가 찾아온 A씨의 경우 근처에 AED가 있었지만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A씨는 구급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런 심폐소생술을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AED 관리비용 떠넘기는 지자체

사정이 이런데도 지자체들은 AED 관리비용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AED는 주기적으로 배터리와 패드 등 부품을 교체해줘야 하는데, 향후 발생할 부품 교체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를 놓고 시·도와 기초지자체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보급하는 AED의 부품 교체비용을 전액 기초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초지자체들이 AED를 설치한 뒤 책임 있게 관리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은 만큼 앞으로 유지관리비용은 기초지자체가 부담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선 구청에서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될 부품 교체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한 구청의 보건소 관계자는 “정부와 시에서 일괄적으로 AED를 내려 보내 놓고 앞으로 발생할 부품교체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

서울 25개구 가운데 가장 많은 588개의 AED를 설치한 노원구의 경우 40만원짜리 배터리를 4년에 한 번, 11만원짜리 패드를 2년에 한 번 교체하는 데 4년간 약 3억원의 비용이 든다. 서울시 전체로는 4년간 최소 50억원 이상이 AED 유지 관리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보급보다 사용법 교육이 더 중요

정부와 지자체가 AED 보급에만 신경쓰느라 심폐소생술 교육에는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는 2013년 주민 참여로 AED위치표시 웹지도를 제작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가 슬그머니 접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북구를 상대로 시범사업을 해보니 예산이 2000만원이나 들어 25개구로 확대하기엔 무리가 있어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AED가 ‘장식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려면 AED 사용법 등을 포괄하는 심폐소생술 전반에 대한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원영 중앙대 보건학과 교수는 “AED 사용 실적이 사실상 전무한 건 대부분의 사람이 심폐소생술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며 “응급구조에 나섰다가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AED 설치·관리 규정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행정처분이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벌칙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심폐소생술 교육 확대에 대한 공감대는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올해 심폐소생술 관련 예산을 지난해보다 7억5000만원 늘린 17억5000만원으로 편성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AED 보급은 어느 정도 이뤄진 만큼 앞으로는 심폐소생술 교육과 홍보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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