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일본 화장품 브랜드들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고급 화장품 브랜드 SK-Ⅱ는 면세점에서 제품 가격(달러 기준)을 인하했고, 드럭스토어 브랜드 오르비스는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화장품 원료의 방사능 오염 우려가 시간이 지나도 불식되지 않아 해당 브랜드들이 타격을 입은 결과란 분석이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Ⅱ는 이달부로 면세점에서 전 제품의 달러 기준 가격을 2~3% 인하했다.
이에 '피테라 에센스'로 불리는 베스트셀러 제품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250㎖·사진) 가격은 기존 171달러에서 167달러로 4달러(2.3%) 내렸다.
이에 대해 SK-Ⅱ 관계자는 "최근 원화 강세를 반영해 달러 기준 가격을 내리기로 한 것"이라며 "면세점 외에 백화점 등에서 원화 기준 가격 인하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최근 해외직구(직접구매)와 예전과 같지 않은 입지 탓에 가격 인하를 결정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SK-Ⅱ는 미국 P&G그룹 산하에 속해 있으나 일본에서 주요 제품을 생산, 대표적인 일본 화장품 브랜드로 꼽힌다.
SK-Ⅱ는 롯데면세점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내국인 매출 5위권에 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통하던 SK-Ⅱ는 지난 5월 오픈마켓인 G마켓에 공식 브랜드몰을 여는 등 채널 다변화 전략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른 일본 화장품 브랜드들도 철수 혹은 사업 축소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오르비스는 내년 2월 국내법인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진출 13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한 것. 올해 8월 공식 홈페이지 판매 중단에 이어 10월에는 드럭스토어 롭스와 외부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판매를 마무리지었다.
클렌징오일로 인기를 끌었던 DHC는 지난해 직영 매장을 정리하고 공식 온라인몰과 CJ올리브영 등 드럭스토어에서만 판매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축소했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산 화장품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고객 이탈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업계에선 풀이했다. 화장품이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인 만큼 심리적으로 꺼리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브랜드 판매고가 하락세를 탔다.
주요 브랜드 부진과 함께 일본 화장품 수입 규모는 매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화장품 수입액 증가율은 2010년 20%대(21.1%)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한 2011년 4.5%로 둔화됐고,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감소폭은 점차 확대되고 있는 흐름이다.
지난해 일본 화장품 수입액은 2012년 2억1926만달러(약 2443억2400만원) 대비 17.6% 급감한 1억8065만달러(약 2012억9800만원)를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아이섀도(-43.1%), 기초화장제품(-36.2%)의 감소폭이 컸다.
최근 국내 화장품 기업들이 분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대체재가 많아졌다는 점도 일본 화장품 브랜드 부진의 요인으로 꼽힌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SK-Ⅱ의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는 미샤를 비롯해 국내 로드숍 브랜드들이 저렴한 모방제품을 선보여 성공한 대표적인 제품"이라며 "방사능 오염에대한 불안이 커진 사이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이 기술개발을 통해 대체재가 됐다는 점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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