再도전 가로막는 기업환경
실패한 기업가에게 다시 기회를 (1) '패배자 낙인' 없애자
폐업한 창업자들, 아이디어·경험 있지만 자금난에 재기 어려워
[ 민지혜 기자 ]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디자인 기업’으로 꼽히는 미국 IDEO는 실패를 장려하는 회사로 유명하다. 이 회사가 애플의 첫 마우스, 손잡이를 두툼하게 만든 오랄비 칫솔, 3개 관절로 꺾이는 삼성전자 모니터 등 혁신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패가 밑바탕이 됐다. 톰 켈리 IDEO 공동대표는 “많이 넘어질수록 스케이트를 빨리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실패를 많이 해봐야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번의 실패로 ‘낙인’이 찍히는 분위기다. 창업에 실패하면 당사자는 신용이 망가지고 재기하기가 어렵다. 최근 개인회생절차 제도가 활발해지면서 재창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일부 개선됐지만 실패를 해본 사람이 오히려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자리잡기까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많은 기업인들의 얘기다.
○실패 기업인, 자금 조달 어려워
통신·오디오 반도체칩과 시스템을 개발해온 민훈 소리젠 대표는 1999년 창업을 했다가 수년간 적자 끝에 2005년 수십억원의 빚을 지고 폐업했다. 이후 재기하기 위해 소음제거 이어폰용 모듈 개발에 매달려 성공했다. 하지만 부도를 낸 경험을 갖고 있는 그가 자금을 구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아직도 시장에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머리를 떼야 알람이 꺼지는 베개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김정우 바우와우 대표는 개발 도중 사업을 접어야 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다. 이후 여성 전용 목주름방지 베개 ‘마시필로’ 개발에 성공했지만 이미 시간과 자금을 많이 쏟아부은 뒤였다. 그는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자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 번 실패한 창업자가 재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폐업한 창업자들은 대부분 ‘자금난’ 때문에 재기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등록된 대출금 연체 기업(개인사업자 포함)은 10만3394개(2012년 말)로 1년 전에 비해 1만1089개 늘었다. 연체 금액도 73조9860억원으로 이 기간 14조2390억원 늘었다.
○신용불량 위험에 창업도 기피
한 번 실패자로 낙인이 찍히면 재기하기 어렵다는 걱정 때문에 창업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문제다.
창조경제연구회가 지난해 7월 조사한 결과 창업을 원하는 대학생 가운데 신용불량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창업하겠다는 의견은 10.5%에 그쳤다. 반면 신용불량 위험이 없다면 창업하겠다는 답변은 69.4%로 매우 높았다. 신용불량자로 내몰릴 걱정을 없앨 수 있다면 창업률이 7배가량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패한 창업자가 다시 창업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중소기업청 5월 조사)로는 자금 부족(29.7%) 외에 생계불안(13.1%), 불안정한 수입 및 매출(12.5%), 신용불량(7.2%), 세금 미납 및 채무(4.7%) 등이 꼽혀 금전적 이유가 67.2%에 달했다.
○“창업 꿈 포기할 수 없다”
블랙박스 아이템으로 세 번 창업한 정종찬 전 아이테크코리아 대표는 “주변에서는 왜 집 세 채를 날려가면서까지 도전하느냐고 묻는다”며 “실패자, 낙오자라는 낙인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실현시키겠다는 꿈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차 내부 룸미러에 블랙박스 기능을 담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자금난, 기술 구현의 어려움, 판로 부진 등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블랙박스 사업을 넘겨주고 지난해 소플로라는 회사를 창업, 물에 뜨는 기능성 신발을 개발 중이다.
중소기업청 재도전성장과 관계자는 “사업에 한 번 실패하면 낙오자로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를 이겨내려면 자금 조달뿐만 아니라 심리치유 등도 필요하다”며 “올해 출범한 재도전종합지원센터는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실패한 기업인을 대상으로 재도전을 위한 준비, 심리치유, 자금 및 법률 자문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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