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420쪽 / 1만7000원
[ 박상익 기자 ]
동양철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공자나 맹자는 들어봤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이름이지만 이들이 전한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고대 중국 철학자들은 복종이나 순종, 예의만을 강조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교수는 이런 세간의 인식에 대해 단호하게 “틀렸다”고 말한다. 신 교수는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에서 서양을 모험과 도전의 문화, 동양을 효도와 희생의 문화란 이분법식으로 구분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동양철학 속에 숨어 있는 비판정신을 불러낸다.
저자는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문화에는 모험과 도전의 주인정신은 빠진 채 굴종의 노예근성만 있다고 한다면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캠페인 동양학’(oriental studies as campaign)의 얼굴은 지금까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주류처럼 굳어진 이런 관점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동양철학을 파괴, 모험, 도전, 독립, 창조, 선언, 기획과 꿈이라는 일곱 가지 주제로 소개한다. 가장 먼저 나오는 맹자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인의(人義)로 설명하기보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주인공 돈키호테와 비교한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격한 것처럼 맹자는 성선을 인간의 가치로 삼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진나라의 멸망을 부른 반란을 일으킨 진승은 고대 로마에서 노예 반란을 주도한 스파르타쿠스와 비슷하다. 시대와 장소는 달랐지만 이들의 출신 배경과 세력의 확장, 비참한 말로가 매우 닮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는 동양철학의 도전과 모험의 역사를 옛 기록에서만 끝내지 않는다. 그는 1980년대 중국 현대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던 리쩌허우까지 불러낸다. 리쩌허우는 철학이 생활과 언어에 그치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다. 저자는 “리쩌허우는 동양과 서양 철학의 개념을 자유롭게 차용하면서도 수많은 신조어를 개발해 현대 중국의 지향점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평가한다. “동양철학의 근간이 나랏님이라고만 생각하면 리쩌허우의 주체적 사상도 만들어질 수 없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동양철학에서 나타나는 복종의 윤리와 순종의 미덕은 특정 시기에만 나타나는 지적 편견”이라고 주장한다. 논어에선 “인과 관련되면 스승이라도 양보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효경에선 “자신의 목소리를 굽히지 말고 싸우라”고 가르친다. 그는 “동아시아 사람들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꿈꾸고 싶은 것을 꿈꾸며 살아왔다”며 “사상가들은 선배의 이름과 주장을 되풀이하곤 했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숨을 건 용기를 발휘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단순한 동양철학 입문서나 이에 빗댄 처세서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군데군데 넣어 옛 가르침이 지금도 유효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중국 철학의 흐름을 비교적 최근까지 소개한다. 딱딱하고 읽기 힘든 고전서가 부담스럽거나 동양철학을 가벼운 처세술로 포장한 책에 싫증이 났다면 머리맡에 두고 음미할 만한 책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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