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1997년 외환위기를 사전에 경고한 국내 정책보고서가 일부 존재했다. 1997년 3월26일 한국은행 자금부가 당시 재정경제원 장관에게 제출한 ‘최근의 경제상황과 정책대응 방향’은 외환위기 도래 가능성을 예고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등 민간 경제연구소도 유사한 보고서를 단편적으로 발신했다. 그러나 개별적 정책지식을 통합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나 적시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안목이 없었다. 우리는 결국 외환위기를 예방하지 못했고, 극복 과정에서도 적잖은 혼선을 감수해야 했다.
왜 정책지식 생태계인가
삼성경제연구소는 2006년 11월1일 ‘CEO Information’(제576호)에서 외환위기를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은 제언을 했다. “좋은 정책지식이 창출되기 위해서는 정책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들이 다양하고, 정책지식 생태계 내에서 활발한 상호작용이 발생하며, 창출된 정책지식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가능한 선별 메커니즘을 갖춘 ‘건강한 정책지식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건강한 정책지식 생태계를 가진 나라가 선진국이다. 대표적인 게 미국이다. 싱크탱크가 2만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독립적 싱크탱크만 수백개다. 정책지식은 싱크탱크를 통해 순환된다. 정부 용역시장은 싱크탱크 간 경쟁의 장이다. 이런 생태계가 미국의 힘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정책지식 생태계는 과연 달라졌을까. 국내에서 정책지식 생산을 주도하던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KIET) 등 국책연구소의 위상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연구소들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우수 인력이 속속 떠나는 중이다. 국책연구소를 개혁할 기회를 놓친 탓인지도 모르겠다. 부처 밑에서 손발 노릇이나 하던 연구소를 통합 조정과 독립성 강화를 위해 국무총리실 소속 연구회로 옮겼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국가의 미래 전략을 지원한다는 구조개혁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국책연구소 일부를 독립재단화, 대학 이관, 국회 소속 등으로 전환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이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지금 국책연구소는 연구자들이 대학으로 옮겨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민간 경제연구소도 쪼그라들기는 마찬가지다. 정작 정책 생태계를 들고 나왔던 삼성경제연구소부터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대학도 기대난망이다. 교수들은 학회를 이리저리 쪼개 그들만의 놀이터 만들기에 분주하다. 폴리페서들이 설쳐대면서 정당, 국회 연구소까지 오염됐다. 민간 기부로 움직이는 독립적 싱크탱크는 요원해 보인다. 이념으로 똘똘 뭉친 시민단체 연구소만 목소리를 높이는 형국이다. 국내 정책지식의 자생성 부재는 외국 지식에 대한 선별 능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미 외국 지식인들의 봉으로 통한다. 이게 한국 싱크탱크의 수준이요, 현주소다.
‘지식 통합자’가 안 보인다
다시 위기라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한국의 주력산업들이 ‘퍼펙트 스톰’에 빠져들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번 위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조찬대국’이라지만 단편적 정책지식들만 난무할 뿐이다. 통합적 관점에서 해법을 제시하는 ‘지식 통합자’는 어디에도 안 보인다. 이러다 또 꼼짝없이 위기를 당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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