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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향기] 伊 명품 브루넬로 쿠치넬리 회장 "럭셔리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한 것…품질은 예술적이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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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미어의 제왕' 브루넬로 쿠치넬리

인간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브랜드 철학을 지키려면
내부 조직 운영에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아야 한다



[ 임현우 기자 ]
‘캐시미어의 제왕’.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브루넬로 쿠치넬리’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카디건 한 장에 200만원, 슈트 한 벌에 500만원을 훌쩍 넘는 초고가임에도 ‘상위 1%가 즐겨 찾는 명품’으로 손꼽힌다.

1978년 탄생한 이 회사는 단조롭기만 하던 캐시미어 의류에 다채로운 색상과 디자인을 불어넣어 새로운 패션 아이콘으로 진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몽골 캐시미어 산양의 목 아랫부분 미세섬유만을 사용하는 깐깐한 품질 관리로도 유명하다.

지난 5일 서울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 개장을 기념해 방한한 브루넬로 쿠치넬리 회장(61·사진)을 만났다. 그는 “브루넬로 쿠치넬리라는 브랜드를 통해 이탈리아의 정통 라이프스타일을 전 세계에 판매하자는 것이 나의 철학”이라고 소개했다.

“럭셔리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특별한(exclusive) 것이어야 합니다. 품질이 최고의 수준으로 정교할 뿐 아니라 예술적이어야 하죠. 우리는 제품 하나하나에 이탈리아 사람들의 장인정신과 명예를 담아냅니다.”


지난해 61개국에서 매출 3억2457만유로(약 4413억원)를 올린 이 회사는 올초 신세계인터내셔날과 국내 판권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쿠치넬리 회장은 “한국 시장은 점점 커질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고, 정말 좋은 파트너를 만나 더더욱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쿠치넬리 회장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청년창업의 성공신화’로 불렸을 것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던 그는 25세 때 학업을 관두고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세워 세계적 명품으로 키워냈다. 창업 아이템으로 캐시미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고, 쉽게 버려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공법이 매우 까다롭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늘 달려 패션업에서도 전문 영역이라는 점이 공학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2012년에는 기업공개를 성공적으로 마쳐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경영 측면에서 이 회사가 다른 명품업체와 차별화되는 점은 ‘인본주의’다. 직원들이 일과 가정생활을 안정적으로 양립할 수 있도록 하루 여덟 시간 이상 일을 시키지 않는다. 관료주의적 관행인 출퇴근 카드나 조직 내 계급도 두지 않는다. 1985년에는 페루자에서 14세기 말에 지어진 솔로메오성(城)을 사들여 이곳으로 본사를 옮기고 ‘마을 재건 프로젝트’에 나섰다. 오래된 건물을 현대적으로 복원하고, 지역 주민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이런 행보는 쿠치넬리 회장의 어린시절 경험과 연관돼 있다.

“시골에서 조용한 유년시절을 보내다 15세 때 도시로 이사한 이후 우리 가족은 팍팍한 삶을 살았어요. 공장 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저녁마다 지친 모습으로 힘겨워했습니다. 그때 결심했죠. 미래에 무슨 일을 하든, 누군가의 존엄성을 파괴하지 않고 인간의 명예를 지키는 일을 하겠다고.”

쿠치넬리 회장은 “우리 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반복 업무이기 때문에 매우 고되다”며 “인간의

치를 존중한다는 브랜드 철학을 지키려면 내부 조직 운영에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VVIP 시장에 철저히 특화해 성공한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사례는 세계적 명품을 꿈꾸는 한국 패션업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되고자 한다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부터 파악해 뚝심 있게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이탈리아에서 기대하는 건 최고급 패션 제품이죠. 한국에서 휴대폰과 TV를, 독일에서 자동차와 기계를 떠올리듯 말입니다. SPA(제조·직매형 의류) 같은 중저가 의류는 한국 말고 다른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쏟아낼 수 있는 것이죠.”

쿠치넬리 회장은 “우리 회사는 오랫동안 천천히 한걸음씩 성장해 왔지만 항상 ‘최고 품질’이라는 목표는 버리지 않았다”며 “당장 매출을 늘리려고 중간 정도로 갔다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누군가에게 금세 추월당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우리 회사가 빠르게 크는 걸 원치 않습니다. 급성장하는 브랜드는 럭셔리의 생명인 특별함을 잃을 수밖에 없어요. 망하는 지름길이죠. 지금까지 이어온 원칙을 지키면서 업의 본질에 충실하면 결국 경쟁에서 이기는 겁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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