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의정서 발효…해외서 원료 사들일 때 로열티 지급해야
한국 '득보다 실'
바이오산업 로열티 부담…최대 年 5000억원 예상
정부 대책은 '걸음마'
관련법 제정 아직 미흡…국제소송 땐 큰 피해 우려
[ 심성미 기자 ]
2002년 일본 화장품업체 시세이도는 인도네시아의 자생식물인 자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들어 영국 일본 등에 특허 51건을 출원했다. 미백 효과가 있는 이 식물로 1000여년 전부터 약재를 만들어 쓰던 인도네시아 농가들은 졸지에 시세이도사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인도네시아의 비정부기구(NGO)들은 시세이도를 ‘생물해적’이라 칭하며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기업 이미지 실추를 우려한 시세이도는 특허 출원을 취하했다.
앞으로 이 같은 생물자원 국제 분쟁 건수가 급증할 전망이다. 나고야의정서가 지난 12일 발효되면서다. 다른 나라 생물자원을 활용해 의약품이나 화장품을 만들어 이익을 볼 경우 자원 원산지 국가와 이익의 일부를 나눠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29일부터 전 세계 194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리고 있는 제12차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총회의 관심사도 이 의정서다.
이 의정서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이 의정서를 비준한 국가로부터 원료를 사들일 때는 해당 국가에 로열티를 내야 한다. 원료의 70%를 해외 생물자원에 의존하는 한국의 화장품 제약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다. 로열티는 해당 기업이나 국가 간 협의를 통해 이익의 3~5% 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여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고야의정서 발효로 국내 전체 바이오산업이 안게 될 로열티 부담은 연간 3892억~5096억원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상위 10대 생물자원 수입국 중 비준 국가는 아직 인도와 스페인뿐이지만 비준 국가는 점점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이 의약품이나 화장품 원료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중국도 내년 말께 비준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헬렌 클라크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는 15일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준절차에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전 세계 국가들에 의정서를 비준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중”이라며 “향후 더 많은 국가에서 의정서 비준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정부 대책은 걸음마 단계다. 나고야의정서 발효로 해외 생물자원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명시한 ‘유전자원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게 전부다.
가장 큰 위험은 이 같은 국제 흐름에 둔감한 중소 제조기업들을 향한 해외 국가들의 무더기 소송이다. 전문적인 법률 대응이 어려운 중소업체들이 국제적인 소송에 휘말릴 경우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생물종에 대한 로열티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국엔 10만여종의 생물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하지만 정부가 조사·확인한 생물종은 4만3000여종이 전부다. 나머지 5만7000여종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기 위한 기본 정보를 완성하는 데 30년가량 걸린다는 것이 환경부의 예상이다. 국내 생물종을 이용하면서 제대로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은 외국 기업에 대한 과태료도 고작 200만원으로 턱없이 낮은 편이다.
평창=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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