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기자의 디지털 라테 <5>
[ 이승우 기자 ]
최근 검찰의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불거지자 ‘대체재’로 화제가 되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1주일 전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처음 이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실행했을 때만 해도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 중 서른 명 남짓만 텔레그램을 설치한 것으로 나왔는데 불과 1주일 사이에 1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고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 기업인, 문화예술계 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가입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연 러시아 개발자가 만든 독일 앱이 한국 시장에서 ‘카카오톡’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ICQ에서 MSN, 다시 카카오톡으로
‘인스턴트 메신저’는 유·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해 두 명 이상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실시간으로 대화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메일과는 다르다. 흔히 ‘친구 목록’이라고 부르는 현재 접속자 목록을 보여준다는 점도 특징이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인스턴트 메신저는 1996년 11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스라엘의 ICQ다. 이후 수많은 메신저들이 등장했다 사라졌다. 1999년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MSN(2005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라이브 메신저로 명칭 변경)은 세계적 인기를 끌었지만 지난해 4월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달 말이면 중국에서도 MSN을 쓸 수 없게 된다. 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2011년 인수한 ‘스카이프’(통화·채팅 등을 결합한 서비스)와 통합됐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메신저가 ‘뜨고 지고’를 반복했다. 2000년을 전후로 ‘버디버디’ ‘세이클럽 타키’ ‘드림위즈 지니’ 등이 인기를 모았다. 업무에 메신저를 쓰는 일이 일반화되면서 MSN이 ‘대세’가 되기도 했고 ‘네이트온’이 그 뒤 왕좌에 올랐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인스턴트 메신저는 모바일 메신저에 자리를 내줬다. 한국에서는 카카오톡, 중국에서는 ‘위챗’, 일본과 동남아에선 ‘라인’, 서구권에선 ‘와츠앱’ ‘바이버’ ‘페이스북 메신저’ 등이 인기다. 대부분 모바일을 기반으로 발전한 서비스다.
○‘네트워크 효과’의 틈새 노려 ‘대세’ 차지
메신저는 소비자가 많을수록 그 상품의 사용가치가 더 높아지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서비스다. 쉽게 말해 아무리 잘 만든 메신저 서비스라도 혼자 쓴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주변 모든 사람이 특정 메신저를 쓴다면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더라도 가치가 훨씬 더 높다.
메신저의 명멸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술 발전 과정에서 네트워크 효과의 빈틈을 잘 찾은 서비스가 ‘대세’가 됐다. 메신저 변화의 변곡점은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유선 인터넷 확산과 2010년을 전후로 한 스마트폰의 대중화다. ICQ는 너무 빨리 등장한 탓에 MSN에 자리를 빼앗겼다. 반면 네이트온은 모바일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해 카카오톡으로 대체됐다.
기술 발전이 마무리되고 네트워크 효과가 본격적으로 작동되면 ‘대세’로 자리잡은 메신저를 추월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에서 네이트온이 MSN을 대체한 것은 무료 문자메시지 제공, 싸이월드 연동 등 편리한 서비스도 한몫했지만, 기존 MSN 친구 목록을 그대로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대부분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전 세계 이동통신사들이 모바일 메신저에 빼앗긴 시장을 되찾기 위해 손잡고 야심차게 내놓은 ‘조인(Joyn)’도 사용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규제가 촉발한 ‘텔레그램 신드롬’
이번 ‘텔레그램 신드롬’은 예외적인 케이스다. 지금까지 메신저의 흥망성쇠가 기술 발전과 이에 따른 시장 변화에서 이뤄진 반면 ‘사이버 망명’이라고까지 불리는 이번 현상은 정치적인 영역에서 촉발됐다.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설치하는 동기는 단순하다. 대화 내용을 저장하는 서버가 독일에 있어 정부의 압수수색과 감시·사찰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텔레그램이 카카오톡의 네트워크 효과를 극복하고 ‘대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여타 메신저들과 비교할 때 최근 기세가 심상찮은 게 사실이다. 향후 추이를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정부가 카카오톡의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하는, 일종의 ‘편의를 위한 규제’가 기업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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