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리본 단 시위대, 센트럴역 등 도심 점거
페이스북·트위터 등 통해 자발적으로 시위 참가
경찰 무력진압에 더 분노
세계 각국 지지 물결에 고무 "中 정부 무력진압 못할 것"
홍콩=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 임현우 기자 ]
“이 도시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나.” “사람들의 노래가 들리는가.”
2017년 치러질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행정수반) 선거 방식을 둘러싼 홍콩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사흘째 접어든 30일 낮 12시, 도심 센트럴역 주변에는 시위 동참을 촉구하는 수십개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전면 통제된 차량 도로는 검정 티셔츠를 입고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시위대가 점령했다.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의 얼굴을 ‘악마’의 모습처럼 흉측스럽게 바꿔놓은 그림과 조형물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쇼핑 천국’이자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로 불리는 홍콩의 현재 풍경이다.
시위대들의 노란 리본은 한국의 세월호 희생자 추모 리본과 모양이 같았다. 한 시민에게 의미를 묻자 “노란 리본은 진정한 독립에 대한 의지를 상징하고, 검정 티셔츠는 시민들이 단합하기 위해 입는 일종의 유니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검정셔츠’가 점령한 亞금융 중심지
홍콩 거리에서 만난 시위대의 절대 다수는 스무살 안팎의 젊은 대학생들이었다. 챈운탱(19)이란 학생은 “홍콩 내 9개 대학 학생들이 수업을 모두 보이콧해 수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과 외신들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인원을 총 1만명가량으로 추산했다. 퇴근시간이 지나 해가 저물 즈음에는 근무를 마친 ‘넥타이 부대’들이 대거 합류해 시위 참가 인원이 불어나는 모습이었다.
곳곳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 주말 경찰의 최루가스를 우산으로 받아내 ‘우산 혁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 시위를 상징하듯, 가드레일에 접힌 우산이 주르륵 걸린 것도 눈에 띄었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물을 나눠주고 있던 자원봉사자 컥인니(28)는 “이 물품은 시위대들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한 것”이라며 “이 운동에는 어떤 주도세력도 없으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이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지난 주말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무력 진압을 강행해 부상자를 낸 데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경찰은 이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이날 홍콩 행정부 주례 회의에서는 최루탄을 사용한 것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내부 비판이 있었다고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세계 각국 지지 물결에 고무된 시위대
이날 홍콩의 한낮 기온은 31도까지 올라갔다. 더위에 지친 일부 시위대 참가자들은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식히며 스마트폰으로 이번 시위에 대한 해외 언론 보도를 확인했다. 대학생 챈푸이앵(19)은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 민주화 시위에 대해 무모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해외에서도 우리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홍콩 시민에 대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1997년 홍콩의 주권을 중국으로 반환한 영국은 29일 외무부 성명에서 “홍콩 정부는 시민들의 시위권을 보호해야 하고, 시민들은 ‘법 안에서’ 권리를 행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이런 자유는 보통선거를 통해 가장 잘 보장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기본법(홍콩의 헌법격)에 따라 이뤄지는 홍콩의 보통선거과 홍콩인들의 열망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홍콩 교민들을 중심으로 한 각국 시민들도 잇달아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집회를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29일에는 호주의 캔버라 퍼스 시드니 등 대도시에서 집회가 열렸고, 중국의 국경절인 10월1일에는 캐나다 토론토,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함부르크, 미국 시애틀 등에서 집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홍콩 시위에 대한 세계 각국의 이 같은 관심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홍콩 문제는 전적으로 중국의 국내 문제”라며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그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못 박았다. 몽콕 지역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챙룬 씨(53)는 “전 세계가 홍콩 시민들의 시위를 예의주시하고 있어 중국 정부로서도 쉽게 무력 진압에 나서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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