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 - 로펌 '증인 컨설팅' 호황
기업인 증인 늘며 수요 급증…대형 로펌들 관련팀 운영
손짓·말투 등 이미지 메이킹
곤란할땐 "나중에 자료제출"…상황 모면 위한 문구도 자문
[ 양병훈 기자 ]
게임업체 A사 부사장은 인수합병 문제로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다. A사는 국회 출석 전 로펌 컨설팅을 통해 “(피해자들의) 민원 제기로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원에게 명분을 줘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A사 부사장은 국감장에서 “위법은 아니지만 향후에는 그런 사안도 감안하겠다”고 말해 상황을 무사히 넘겼다. 대기업 하도급업체 B사 사장도 비슷한 시기에 국회로 불려나갔다. 의원들은 대기업의 불법 파견을 문제삼기 위해 대기업이 B사 경영에 관여했는지를 집중 추궁할 계획이었다. B사는 로펌에서 컨설팅을 받아 탈없이 마쳤다.
○로펌서 국감 컨설팅까지 개발
국내 대형 로펌들은 최근 앞다퉈 ‘국정감사 증인 컨설팅’ 전략을 개발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기업인이 국회에 증인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서비스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로펌의 입법지원팀이 이 서비스를 하지만 법무법인 세종처럼 국감 전담팀을 별도로 꾸린 곳도 있다. 비용은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 방식으로 청구한다. ‘풀 서비스’를 받으면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이 나온다.
로펌별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태평양이 비교적 일찍 이 서비스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과 지평도 증언 컨설팅을 주력 상품으로 운영 중이다. 광장과 율촌은 매뉴얼 등 절차 개발을 끝내고 일반 자문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로펌들은 컨설팅 의뢰가 들어오면 우선 증인 채택 목적과 질의할 의원 성향을 파악한다.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부르는 이유가 분명해지면 해당 현안에 대한 법률 검토에 나선다.
변호사 C씨는 “위법 소지가 없다면 담백하게 답해도 되지만 있으면 주의해야 한다”며 “솔직하게 말하면 ‘자백’이고 부인하면 ‘위증’이 될 수 있는 만큼 두루뭉술하게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D씨는 “사전에 의원실과 접촉해 대안을 내는 것도 국감장에서 호통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현안 쟁점 없이 이슈를 새로 만들기 위해 소환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변호사 D씨는 “이 경우 대응이 어렵지만 미리 의원실과 교감하면 직격탄은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의원이 자세한 해명을 원하는지, 단답형을 원하는지도 파악해 그에 맞게 준비한다. 변호사 E씨는 “의뢰인을 증인 명단에서 빼달라고 의원실을 설득할 때도 있다”고 했다.
○해당 의원실과 사전 접촉도
로펌은 사전 작업이 끝나면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의뢰인에게 답변 시 유의할 점을 알려준다. 질의응답 예행연습을 하는 곳도 있다. 변호사 F씨는 “국감 절차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막연히 느꼈던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평정심을 잃지 마라” “논쟁하지 마라” “손짓하지 마라” 등도 자주 조언하는 내용이다.
곤란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표준 답변 문구’도 알려준다. 뻔한 내용이라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그대로 대답하기도 곤란한 경우에는 “관련 자료를 나중에 제출하겠다”고 답하도록 한다. 대답하기 곤란하지만 모른다고 하면 더 곤란해질 때는 “아는 범위 내에서 말하자면…”이라고 한 뒤 두루뭉술하게 답변하도록 한다.
변호사 E씨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전 이마트 대표가 ‘모른다’는 말로 일관했다가 의원들이 ‘그럼 아는 사람 나오라’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소환했다”며 “마냥 대답을 피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대안을 내놓아라”(전 장관), “나중에 사장 한 번 해봐라”(전 공기업 사장) 등도 잘못된 답변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변호사 F씨는 “국감을 ‘꼼수’로 피한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라며 “컨설팅은 절차에 대한 증인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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