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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타피 ESSEC 前 총장 "경영학은 비즈니스 아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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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대·MBA 평가순위 지나치게 목 맬 필요 없다"
佛 그랑제꼴 인문학 소양·실무 경험·3개 언어 필수



[ 김봉구 기자 ] “본질적으로 경영학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다루는 학문이에요. 경영학을 비즈니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측면에선 오히려 컬처(문화) 요소가 강합니다. 미국식 모델은 계량화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의미와 문맥을 생략하는 학문이 돼선 곤란하죠.”

피에르 타피 팩스터(PAXTER) 설립자(56·사진)는 프랑스의 상경계 최고 그랑제꼴인 ESSEC(고등경제상업학교) 총장을 10년 넘게 맡아 국제화를 이끈 인물이다. 경영학교육 인증을 주관하는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AACSB) 주축 멤버로도 활동해 왔다.

그가 설립한 팩스터도 경영 분야를 다루는 국제적 컨설팅 회사다. 경영대와 대학, 공공기관이 주요 고객이며 학문적 전략, 교육적 디자인 컨설팅과 경영자 재교육 등을 담당한다.

지난달 27~29일 고려대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태평양 경영대학장 서밋(summit)’ 참석차 방한한 타피 전 총장을 한경닷컴이 단독 인터뷰했다.

행사 마지막날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만난 타피 전 총장은 “경영대 졸업생은 사회에 진출해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나 전통적 지혜 등의 요소를 두루 감안해 유기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며 “예컨대 ‘흥부와 놀부’ 같은 전래동화도 훌륭한 경영학교육 텍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비즈니스와 접목시킬 수 있는 한국적 가치로 충(忠)·효(孝)·인(仁)을 주목했다. “한국 사회의 특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신뢰에 기반한 국제적·보편적 정서”란 설명이 뒤따랐다.

그는 “이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왜’와 ‘어떻게’를 외면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아시아의 경영학교육 모델 변화는 여기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도 말했다.

경영대를 비롯한 국내 대학의 ‘평가 집착’ 현상에 대해선 평가에 목을 매지 말라고 조언했다.

타피 전 총장은 “평가 순위(랭킹)가 모든 것을 말해주진 않는다” 며 “랭킹은 측정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평가에 맞춰 학문이 지나치게 표준화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랭킹보다학교의 전체 비전과 목표 등 시스템적 측면이 더 강한 레이팅(rating), 이를테면 인증제도가 보다 정확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학 위의 대학’ 그랑제꼴의 독특한 경쟁력은 최상위 학생들을 선발해 △인문학 소양 교육 △인턴십 등 전문가적 실무 경험 △불어·영어·제2외국어의 3개 언어 구사 등을 필수화한 데서 비롯됐다고 귀띔했다.


- 오래 ESSEC 총장을 지냈다. 지금 있는 팩스터는 어떤 곳인가.

“프랑스와 싱가포르에 위치한 국제적 컨설팅 회사다. 기업과 대학이 파트너십을 맺어 활용하고 협력하는 방안 등을 다룬다. 지난 25년간 엔지니어와 경영대 학장·총장을 지낸 경험을 살려 대학과 기업 사이를 연결해 기업가정신, 산학협력 등을 개선하는 자문을 주로 하고 있다.”

- 대학과 기업 경영을 연결시키는 일을 한다고 이해하면 되나.

“그런 셈이다. 일반 기업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필요로 할 때나 대학 또는 경영대가 목표(미션)를 추구할 때도 역할을 한다. 주 고객은 경영대와 대학, 공공기관이며 학문적 전략, 교육적 디자인 컨설팅과 경영자 재교육 등을 맡고 있다.”

- 한국에선 우수 학생들이 경영학에 몰린다. 유럽도 그런가.

“경제적 서비스가 세분화됨에 따라 트렌드가 바뀌고 경영학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졌다. 프랑스의 경우 20년 전만 해도 이공계가 강세였다.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적 인정도 있었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점차 경제구조가 복잡해지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많은 포트폴리오가 필요하게 됐다. 때문에 경영학 수요가 늘어나 지금은 균형을 맞추고 있다.”

- 경영학이 이론에 치우쳐 기업 현장과 괴리가 생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장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주기 위해선 이론화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이론화 방법 자체가 경영학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교육 대상에 따라서도 적용 방법이 달라진다. 경영대학원(MBA)에 진학하는 30~40대는 많은 실무 경험을 쌓아 이론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실무 경험에 이론을 접목시켜 살을 붙일 수 있어서다.

하지만 고교를 갓 졸업한 대학 1~2학년 수준에선 이론을 집어넣는 형태의 교육이 돼선 곤란하다. 이론은 일종의 도구다. 도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실무 경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구만 지나치게 강조해 가르치면 실생활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

- 현장성을 살리라는 얘기로 들린다.

“본질적으로 경영학이란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관한 학문이다. 경영대 졸업생들은 사회에 나가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론적 교육만으로는 유기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미국식 교육시스템은 이성적 판단, 계량화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왜(why)’와 ‘어떻게(how)’를 무시하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방향으로만 가면 곤란하다.”

- ‘아태 경영대학장 서밋’ 기조강연에서 충·효·인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인가.

“경영학에 이런 가치를 연결시키는 게 특이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컨대 한국의 충·효·인 같은 개념은 유럽의 기독교적 문화와 상이하지만, 개인의 신뢰에 바탕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보편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통계 수치와 비즈니스가 경영학의 전부는 아니다.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판단이 경영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

어떤 결정이 단기적 수익 창출을 위한 것인지, 장기적으로 사회공헌을 추구하는지 봐야 한다. 결정권자가 윤리적 판단을 하는지, 욕심에 따라 판단하는지가 경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흥부와 놀부’ 같은 전래동화도 훌륭한 경영학교육 텍스트가 된다.”

- 경영대·MBA를 비롯해 한국 대학들은 국제평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어떻게 보나.

“랭킹은 아주 작은 특정 수치만 보고 결정하는 단기적 측정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경영대나 MBA 국제평가의 경우 졸업생 연봉이 중요 측정 기준이 된다. 그럴 경우 학문적 목표, 교육 여건, 연구 실적, 기업과의 관계, 국제화 등의 요소는 배제된다. 한마디로 랭킹이 모든 것을 다 말해주진 않는다.”

- 평가에 지나치게 목 맬 필요는 없다는 것인가.

“평가마다 측정 기준이 다르다. 어떤 학술지(저널)는 졸업생 연봉을, 다른 학술지는 교수 논문 실적을 주로 평가한다. 당연히 랭킹이 불안정하게 나온다. 랭킹 자체가 이런 한계를 안고 있다. 대학들이 평가에 목매는 현상이 안타깝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단편적 랭킹보다 범위가 넓고 정확한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레이팅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 AACSB, 유럽경영대학협의회 인증(EQUIS) 같은 인증제도가 더 적합하다고 보나.

“그렇다. 대학들의 시스템이 다양하고 상황도 모두 다르다. 레이팅은 결국 시스템이 얼마나 잘 연계돼 있는지, 또 학교의 가치나 목표와는 함께 가는지 등을 볼 수 있다. 단일한 기준에 의한 퀄리티 평가보다 다양한 잣대를 활용한 총체적·종합적 평가가 필요하다.”

- ESSEC의 국제화는 성공사례로 꼽힌다. 국내 경영대나 MBA에 조언한다면.

“맹목적 국제화가 아니라 학교의 정체성과 목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ESSEC의 사례를 보면 우선 학생 전체가 국제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외국인 학생을 선발하는 노력과 영어강의 등 인프라도 갖춰야 한다. 교원의 국제화 역시 필요하다. ESSEC의 경우 교수진 70%가 해외 32개국에서 왔다. 학생들이 굳이 외국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여러 나라에서 온 교수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국제화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무조건 외국인 교수와 학생만 데려오는 게 능사는 아니다. 세심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우수 외국인 학생이 30% 정도 되면 본국 학생과 경쟁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교원 국제화로 인한 ‘거울 효과’도 있다. 같은 나라 출신 교수들이 있으면 타지에 온 학생도 힘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굉장히 전략적인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려대 경영대가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과 협정을 맺거나 연구협력을 하게 되면 브랜드가 확 올라가지 않겠나.”

- 그랑제꼴의 엘리트 교육시스템이 주목받는 비결은 뭔가.

“우선 최상위 우수 학생을 뽑는다. 학교에 들어와선 1~2학년 때 전체 과목의 30~40%가 인문학 과목으로 채워진다. ESSEC을 비롯해 국립행정학교(ENA), 시앙스포(파리정치대학), 그리고 이공계 그랑제꼴인 에꼴 폴리테크니크도 예외는 아니다. 졸업 전에 인턴십 등 실무 경험을 필수적으로 쌓아야 하고, 불어·영어·제2외국어의 총 3개 국어를 구사하도록 요구한다.”

글= 한경닷컴 김봉구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진연수 기자 jin9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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