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EO - 마이클 코왈스키 티파니 CEO
'티파니에서의 아침' 100% 만족
멀티 스펙트럼 전략
저가·고가 보석 시장 동시에 공략
자체 제작 비중 80%로 높여
경기흐름 따라 생산량 유연하게 조정
'보석 민주주의' 달성
최고 디자이너에 銀제품 맡겨
'러빙 하트' 등 베스트셀러 쏟아내
엔트리 제품이 총 매출의 20%
[ 김보라 기자 ]
미국에는 소비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몇몇 회사가 있다. 코카콜라, 월마트, 애플 등이 대표적이다. 조금 이질적인 이름도 있다. 177년 역사의 명품 보석회사 ‘티파니’다. 사람들은 티파니의 경영 실적이 공개되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었다’ 또는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와 같은 진단을 내놓는다. 주가 고용 소비 지수 같은 공식적인 지표보다 더 생생하게 실물 경제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마릴린 먼로가 사랑한 128.54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청혼반지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가 어떻게 대중의 소비 흐름을 알려주는 가늠자가 됐을까. 해답은 1983년 입사 이후 30년 넘게 티파니에 몸담아온 마이클 코왈스키 티파니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62)의 경영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CEO의 수명이 길어야 5년인 명품 업계 관행을 깨고 15년간 재임한 보기 드문 장수 CEO다.
불황? 티파니의 강점에 집중하라
코왈스키 회장은 1999년 티파니 수장이 된 이후 성장이 정체된 미국 시장 대신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소재를 다양화해 티파니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 그가 취임하던 당시 주당 15달러 선을 오르내리던 티파니의 주가는 현재 100달러 수준. 연매출은 작년 기준 40억달러(약 4조700억원)에 이른다. 티파니는 지난 4분기(11~1월) 1억360만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작년까지 30년 연속 흑자 행진을 했다. 코왈스키 회장은 “세계 5대 보석업체 중 4곳은 프랑스 기업이고 유일하게 티파니만 미국 기업”이라며 “장기적 안목과 강력한 비전, 선택과 집중이 티파니의 명성을 이어가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코왈스키 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 등 극심한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나홀로 승승장구한 보석업계의 명장으로 불린다. 그는 “우리는 어떤 위기가 찾아와도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했다”고 회고한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다른 분야로 무분별하게 확장하는 것을 경계했다. 매출 증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브랜드의 미래를 고민하는 게 경영인이 가져야 할 기본 자세라는 생각에서다.
1999년 CEO에 오른 그는 고가와 저가 제품을 동시에 공략하는 ‘멀티 스펙트럼 전략’을 내놨다. 당시 다른 보석 업체들은 불황타개책으로 줄줄이 가격을 내리고 있었다. 코왈스키 회장은 저가와 고가품을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을 과감히 선보였다.
그는 CEO가 되자마자 티파니 고유의 로고를 제품 전면에 새겨넣은 ‘리턴 투 티파니(Return to Tiffany)’ 제품을 내놨다. 또 2002년 회장 선임 직후에는 가격 재조정을 선언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 있는 일부 초저가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중산층 이상이 구매할 수 있는 고급 제품군 ‘프랭크 게리 라인(2004)’ 등을 확보했다. 또 모든 제품을 자체 제작하겠다는 비전을 내걸고 20년 전 20%였던 자체 제작 비중을 현재 80%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자체 생산 비중을 늘리면서 경기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었고, 위기 때 큰 방패막이 됐다”고 말했다.
은 제품에 집중…‘보석 민주주의’ 달성
티파니는 전통적으로 최상급 다이아몬드가 가장 유명하다. 전 세계 상위 1%도 안되는 최상급 다이아몬드 중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별된 다이아몬드만을 사용하는 티파니는 다이아몬드가 가진 광채와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디자인으로 보석 업계의 선두에 섰다. 177년 역사를 거치는 동안 변함없이 여성들이 가장 받고 싶은 프러포즈 반지로 꼽혀왔다.
코왈스키 회장은 티파니의 다이아몬드 명성은 지키되 은 제품의 품질을 높여 ‘티파니의 민주주의’를 달성했다. 티파니의 베스트셀러인 ‘러빙 하트’ ‘티어 드롭’ ‘X펜던트’ ‘열쇠 펜던트’는 모두 은으로도 제작된다.
코왈스키 회장은 “은은 굉장히 훌륭하고, 합리적이고, 고급스러운 금속”이라고 자부한다. 그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티파니에 영입한 후 그들에게 가장 먼저 은을 소재로 제품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 디자이너들이 초고가 원석을 통해 디자인을 뽐내려고 할 때 코왈스키 회장은 거꾸로 저가 상품에 최고의 디자인을 적용하게 한 것이다.
그는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에서 오드리 햅번이 티파니의 보석을 동경하는 것처럼 ‘티파니 드림’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최상의 디자인을 공유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한다. 코왈스키 회장은 은 세공품 매출을 현재 티파니의 총 매출의 20%로 높였다. 다른 명품업체들이 이 같은 ‘엔트리 제품(브랜드 접근성을 높인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 비율이 5%대인 것과 대비된다.
소문난 자연애호가이자 다이버
코왈스키 회장은 소문난 환경운동가이자 다이버다. 그는 카리브해에서 태국까지 지구 곳곳을 여행하며 바닷속을 탐험한다. 1990년대 다이빙을 처음 시작한 그는 가라앉은 배와 그 주위를 탐험하는 난파선 다이빙을 하던 중 해양 생태계 보존과 수중 고고학 분야에 눈을 떴다. ‘태초의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삼는 티파니의 경영 철학처럼 코왈스키 회장 역시 ‘자연이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믿는다.
코왈스키 회장은 바다 탐험을 하면서 점점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깨닫고 2002년부터 산호 제품 생산을 중단했다. 금과 다이아몬드도 환경적 도덕적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방법으로 생산하는 곳에서 공급받았고, 다른 기업을 향해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는 “지구에는 보석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있는 곳이 많은데, 산호초와 해양 생태계가 파괴되면 다시는 복원이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의 생각에 디자이너들도 공감한 걸까. 티파니의 보석 디자인은 자연과 매우 닮았다. 자연스러운 곡선이 살아있는 원석 고유의 아름다움에 다른 거추장스러운 장식은 최대한 뺀다. 그는 티파니 최고의 자산으로 자연을 꼽는다. 다이아몬드 금 루비 등 보석과 귀금속이 자연으로부터 온 선물이고, 디자인 역시 자연에서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그는 “티파니를 만드는 건 절반이 예술, 절반이 과학”이라고 말한다. 다이아몬드의 광채와 티파니만의 커팅법, 장인들의 디자인이 만나 나오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보석업체 직원들도 결국 보석업계 종사자의 종착역은 티파니라고 할 정도다.
내년 3월 CEO직에서 물러나는 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년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비상임 이사직에 머물겠지만 지난 30년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곳에서 일하며 누구보다 환상적인 나날을 보냈다”고 말했다. 또 “티파니가 창업 이래 남북전쟁, 두 번의 세계대전, 대공황과 금융위기를 모두 겪고도 더 아름답게 빛났듯 앞으로의 날을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