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KT ENS 사기대출, 은행 책임 85%"
[ 김일규 기자 ] 법원이 ‘KT ENS 사기 대출’ 사건에서 은행 책임이 85%라고 결정한 것은 은행들이 그만큼 대출 심사를 소홀히 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출상환 부담을 덜게 된 KT ENS는 자신들이 지급보증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을 포함해 인정된 채무 100%를 갚기로 했다. 이에 따라 원금 손실을 걱정했던 ABCP 투자자 669명(법인 포함)은 2024년까지 투자원금을 매년 나눠서 지급받게 된다.
◆금융사의 허술한 대출 관행 탓
하나은행 등 금융회사 16곳은 KT ENS에 대한 회생채권조사 확정재판에서 “KT ENS가 지급을 보증한 매출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해줬다”며 대출금 전액(2894억원)을 채권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전부 허위 매출채권이기 때문에 채권·채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다만 KT ENS 직원의 잘못은 인정되는 만큼 KT ENS에 사용자 책임을 일부 물어 금융회사들이 신고한 채권 중 15%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고 결정했다.
나머지 85%는 모두 해당 금융회사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우선 매출채권 등 서류를 위조한 KT ENS 직원이 해당 서류를 결재할 권한이 없는 직책임에도, 이 직원이 건넨 서류만 보고 대출을 한 것은 전적으로 금융회사 잘못이라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금융회사들이 KT ENS의 매출 현황을 살펴봤다면 사기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란 이유도 있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로서 상대 기업의 거래 관계를 전혀 살피지 않고 위조된 서류만 보고 대출을 했다는 것이다.
일부 금융회사는 서류조차 허술하게 심사한 탓에 KT ENS 인감도장이 위조된 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사기대출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 허위 세금계산서 역시 금융회사들이 해당 계산서가 세무당국에 신고됐는지 등을 확인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과정을 보면 금융회사들이 ‘KT’라는 대기업 이름만 믿고 허술하게 심사를 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회사들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2460억원가량을 떼이게 됐다. 추가 충당금을 쌓고 손실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관련 사안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제재 수위도 높아질 수 있다.
◆KT ENS, 보증채무 100% 상환
금융회사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지만 KT ENS가 지급보증한 ABCP 투자자들은 원금을 돌려 받을 수 있게 됐다. KT ENS가 보증채무를 포함해 모든 채무를 갚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지난 22일 KT ENS의 회생계획을 인가했다. KT ENS 지급보증 ABCP에 투자하는 특정금전신탁은 기업은행 등 5개 금융회사에서 모두 1010억원어치 팔렸다. 투자자는 669명에 이른다.
다만 투자원금을 한번에 모두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KT ENS는 ABCP를 발행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행사들이 2년 내 원금을 갚지 못하면 보증책임을 지고 2017년부터 원금을 분할 상환키로 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는 매년 원금의 10%씩 갚을 계획이다. 2023년과 2024년에는 매년 20%씩 갚아서 100% 변제할 예정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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