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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나파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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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1976년 5월24일 프랑스 파리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와인 시음회가 열렸다. 전통의 프랑스산 와인과 후발주자인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맛을 비교하는 블라인드 테스트였다. 샤르도네 품종으로 화이트와인을,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레드와인을 평가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캘리포니아 와인의 승리였다. 레드와인은 ‘스팩스 리프 와인 셀러’가, 화이트와인은 ‘샤토 몬트레나’가 각각 1위를 차지했다. 둘다 캘리포니아산이었다. 영국인이 주관했고 심판관은 모두 프랑스인이었다.

2주 뒤에 ‘타임’지가 이 테스트 결과를 ‘파리의 심판’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캘리포니아산 와인은 프랑스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급와인으로 브랜딩하는 데 성공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이 테스트는 공정하지 않았다. 시음에 올려진 와인 숫자가 6 대 4로 캘리포니아산이 더 많았다. 채점방식이나 빈티지 선정까지 캘리포니아 와인을 홍보하기 위한 영국인의 의도된 이벤트였다.

어쨌든 미국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이후 캘리포니아 와인의 주산지인 나파밸리는 세계적 관광지가 됐다. 현재 한 해 약 380만명이 찾고 관광수입만 14억달러, 포도주 생산 및 와인 판매 등까지 합하면 500억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내는 곳이다. 대규모 와이너리 300곳을 비롯 1800여곳의 와이너리가 모여 있다.

나파밸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많다. ‘주홍빛 햇살이 대지를 적시는’ 나파밸리에 영국인이 찾아와 프랑스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며 포도농장주 부자를 설득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와인 미라클’(2008)이다.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각색상을 받은 ‘사이드웨이’(2004)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이 너무 좋아했던 ‘피노’는 그해 최고 유행어가 됐고 피노누와 와인 덕분에 나파밸리가 특수를 누렸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따뜻한 날씨가 많아 숙성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그런만큼 빈티지를 별로 따질 필요없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주 후발주자가 된 것은 금주령(1920~1933) 때문이었다. 와인 장인들이 다 떠나는 바람에 금주령이 풀린 뒤에도 1970년대까지 제대로 된 와인을 생산하지 못했다.

엊그제 캘리포니아 북부 베이지역을 강타한 6.0 규모의 지진으로 나파밸리 지역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와인산업이 10억달러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다.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었고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번엔 자연이 그 와인을 쏟아 버렸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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