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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Analysis] [김지욱 칼럼] 사건중심(Event-Driven) 헤지펀드(하)-루빈의 아이들 (The Rubin’s 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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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인사이트 Analysis] [김지욱 칼럼] 사건중심(Event-Driven) 헤지펀드(하)-루빈의 아이들 (The Rubin’s 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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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08월20일(11:19)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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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칼럼] 사건중심 헤지펀드가 꼭 재정거래(Arbitrage)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오늘날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데스크에서 로버트 루빈으로부터 사사한 소위 “5인방”이 이 계보의 헤지펀드들 중에서 가장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이들이 누구이며,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런 성공을 거둔 것인지 살펴보는 것은 향후 한국의 헤지펀드 업계에 나름 시사점이 있을 것 같다.

우선 이 5인방 중 리더격인 톰 스테이어(Tom Steyer)의 파랄론(Farallon)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다. 그 외 나머지 4인은 옥치프(Och-Ziff Capital Management)의 다니엘 옥(Daniel Och), 페리캐피탈(Perry Capital)의 리처드 페리(Richard Perry), 이튼파크(Eton Park Capital Management)의 에릭 민디치(Eric Mindich), 그리고 ESL인베스트먼트(ESL Investments)의 에드워드 램퍼트(Edward Lampert)다. 톰 스테이어의 파랄론까지 이 5명이 운용하는 헤지펀드는 모두 총 운용자산(AUM)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30위 안에 드는 곳들이다.

먼저 뉴욕증시에 상장된 헤지펀드이자 총 운용자산 기준으로 400억 달러(약 40조원)를 돌파한 세계 5위의 펀드 옥치프부터 살펴보자. 이 회사 창설자인 다니엘 옥은 1961년생으로, 뉴저지 출생의 유태인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UPenn)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골드만삭스 트레이딩부서의 리스크재정거래(Risk Arbitrage)데스크에 입사해서 고속승진가도를 달린다. 당시 골드만삭스 트레이딩부서의 총괄책임자는 물론 나중에 이 회사 공동사장 및 미국 연방 재무장관이 되는 로버트 루빈이다. 1994년에 자신의 회사를 새우기 위해 골드만삭스를 퇴사하였을 때의 그의 직함은 “미국 주식트레이딩부분 공동대표 및 프랍트레이딩 글로벌대표”라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나이가 당시 불과33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골드만삭스의 실력 제일 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회사 창립을 위해 그는 평소 친분관계가 두터웠던 치프 형제들에게서 1억달러(약 1천억원)를 빌리는데, 치프 가문은 미국 최대 출판재벌 중 하나인 치프-데이비스 미디어(Ziff Davis Media)의 소유주였다. 1억불로 시작한 이 회사는 13년이 지난 2007년에 운용자산이 300억불로 300배가 증가하며, 그에 자신감을 얻어서 2007년 뉴욕증시에 상장을 한다.

상장 당시 주가는 주당 32달러였으나 현재는 주당 13달러 수준이며 시가총액은 23억달러 수준이다. 처음에는 전형적 사건중심 헤지펀드 유형에서 시작하였으나, 운용자산이 너무 커짐에 따라 이제는 다수전략펀드(Multi-Strategy Fund)로 방향을 선회하였고, 미국, 유럽, 아시아, 그 외 이머징국가에 모두 자산을 분배하여 전세계적으로 자금을 굴리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주식보다는 메자닌, 구조화채권(Structured Credit) 및 부동산 쪽으로 자산배분 비중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치프는 레버리지를 가급적 쓰지 않는 투자전략으로도 유명하다.

옥치프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 페리캐피탈이다. 페리캐피탈의 설립자인 리차드 페리(Richard Perry)는 언론에 많이 노출된 인물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철인삼종경기 선수이기도 한 그 스스로가 언론을 별로 회피하지 않고 자주 인터뷰에 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 아내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 리자 페리(Lisa Perry)라는 이유도 있다. 1955년생인 페리는 197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UPenn) 와튼스쿨 학부를 졸업하고 골드만삭스 트레이딩부서로 입사했다. 물론 당시 트레이딩부서의 헤드는 로버트 루빈이었다. 대학시절,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가 재정원조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바람에, 밤에 극장의 지배인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신히 대학을 졸업한 페리에게는, 루빈은 단순한 직장 상사가 아니라 일종의 아버지 또는 인생의 멘토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둘의 우정은 그 후 3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1988년, 골드만삭스 트레이딩부서의 리스크재정거래담당 수석 트레이더 자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간 페리는, 당시 베어스턴스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외삼촌 지미 케인(Jimmy Cayne; 2008년3월, 베어스턴스가 무너질 당시 마지막 회장이었다)으로부터 4백만달러의 시드머니와 베어스턴스 본사의 구석방 하나를 얻어서 자기 이름을 내건 헤지펀드 페리캐피탈을 출범시킨다. 페리캐피탈의 운용전략은 거의 완벽하게 골드만삭스의 재정거래부서의 것을 본 딴 것이었다. (페리는 한번도 이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골드만삭스는 페리캐피탈의 프라임브로커였고, 트레이딩 아이디어를 양사는 공유하였으며, 공동투자도 여러 건을 같이 한다.

설립초기부터 20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합병재정거래 등 이벤트드리븐 전략을 주로 구사한 페리캐피탈은, 투자포지션을 헤지펀드 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장기간 가져가는 특색을 보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헤지펀드라기 보다는 오히려 프라이빗에쿼티펀드 같은 형태의 투자 건들을 줄줄이 성공시킨다. 대표적인 장기투자의 예로, 1994년에 인수한 FTD라는 전국 꽃배달서비스 업체가 있었는데, 1억3천만달러에 인수하여 10년후인 2004년에 4억5천만달러에 매각한다. 페리가 이 FTD를 인수한 후에 영입한 전문경영인이 바로 나중에 e베이의 최고경영자를 거쳐 현재 휴렛팩커드사의 최고경영자로 있는 메그 휘트먼 바로 그녀다. 페리의 투자 중에 또 다른 유명한 케이스가 바로 보스톤의 글레이저 가문이 2005년 인수한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클럽 건이다.

당시 이 투자에 대해 대부분의 은행들이 대출을 거절했는데, 다니엘 옥의 옥치프 및 역시 하버드대학 출신 헤지펀드의 거성 케네스 그리핀의 시타델 펀드와 연합하여 인수자금 5억2천만 달러 전액을 댄다. 현재 페리캐피탈이 가진 가장 큰 포지션은 뉴욕의 대표적인 백화점인 바니스뉴욕(Barney’s New York)이다. 페리캐피탈의 현재 총 운용자산은 130억달러(약 13조원)를 넘으며, 설립한 이후 작년까지 수수료를 차감하고도 매년 15%씩의 연환산수익률을 투자가들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역시 루빈에게 사사받은 골드만삭스 트레이더 출신이 만든 좀 특이한 헤지펀드가 ESL인베스트먼트다. 이 회사의 창업자 에드워드 램퍼트는 1962년생인데, 약관 26세의 나이로 1988년에 ESL이란 헤지펀드를 창업한다. ESL은 물론 램퍼트의 이름(Edward S. Lampert)의 이니셜이다. 램퍼트도 다니엘 옥이나 톰 스테이어처럼 전형적 유태인이며, 부친은 뉴욕의 잘나가는 로펌 변호사였다.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 전공으로 최우등생으로 졸업을 하고, 1985년 트레이딩부서 합병재정거래데스크에 입사한다. 입사 전에 대학시절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골드만삭스의 썸머인턴으로 일했는데, 이미 그 때 트레이딩 모델을 하나 개발하여 트레이딩 부서 총괄책임자인 루빈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실 램퍼트의 천재성은 이미 선배들인 스테이어나 페리, 그리고 동년배인 다니엘 옥을 앞서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램퍼트는 큰 결점이 하나 있었다. 개인성향상, 큰 조직에 있는 것이 편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팀워크를 너무 강조하는 골드만삭스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입사 3년만인 1988년에 루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퇴사하고 자기 헤지펀드를 차린다. 이 서른 살도 안 된 애송이 청년에게 시드머니를 맡긴 사람은, 그 전년도에 우연히 여름 휴양지에서 램퍼트를 만난 억만장자 리차드 레인워터(Richard Rainwater)였다. 레인워터는 훗날, 램퍼트와 단 두 시간 이야기 해보고 나서 이 청년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눈치채고, 그에게 2천8백만 달러를 맡길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여하튼 ESL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헤지펀드들과 확연히 구분되었다. “분산”이 대명사인 헤지펀드 투자의 세계에서, ESL은 “몰빵”투자를 진행한다. 그리고 “투자 후 발 빠른 엑시트”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헤지펀드와는 달리, ESL은 회사의 성과가 나오기까지 끈기를 가지고 오랫동안 기다린다. ESL은 특정 시점에 절대 10개 이상의 포지션을 가져가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움직이며, 헤지펀드로서는 놀라울 정도인 7년 이상의 장기투자를 서슴없이 진행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확실히 그 업종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섹터에만 투자를 하는데, 지금까지 ESL이 성공한 투자들이 주로 리테일이나 유통, 물류 섹터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런 부분이 돋보인다. (ESL은 자기가 잘 모르는 섹터에 단 한번 투자를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2007년에 행한 씨티그룹에 대한 투자였다. 다음해 금융위기가 오면서, 이 포지션에서 대규모 손실이 났다) 현재 ESL은 미국 최대의 리테일체인 회사 중 하나인 Kmart의 모회사인 시어스(Sears)의 최대주주(53%)이며, 램퍼트는 심지어 2013년 5월에 이 회사 CEO가 병이 나서 휴직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자, 임시 CEO로 취임하여 일하고 있다.

1988년 설립 이후, ESL은 지금까지 투자가들에게 무려 29%라는 연환산수익률을 안겨주었고, 이 펀드의 현재 총 운용액은 120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한다. 램퍼트는 2004년에 기록을 하나 세우는데, 그 한 해 동안 그는 개인적으로 10억달러(1조원)를 벌어서, 헤지펀드 업계 역사상 1년에 10억달러 이상을 개인적으로 번 최초의 헤지펀드 메니저로 등극한다.

루빈의 아이들 5형제 중 막내가 바로 떠오르는 신흥 강호 이튼 파크(Eton Park Capital Management)의 에릭 민디치다. 1967년생인 민디치는 위에서 살펴본 4명과도 또 다른 것이, 골드만삭스를 상당히 오래 다녔고, 그것도 거의 최고위 직급의 임원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때문에 펀드를 처음 만들었을 때 위 4명과는 달리 상당히 우호적인 환경에서 펀드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 특색이다. 하버드대학 경제학부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1988년 골드만삭스 트레이딩부서의 리스크재정거래 데스크에 취직한 민디치는, 루빈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골드만삭스에서 초고속승진을 한다.

입사한지 겨우 6년만인 1994년, 골드만삭스 150년 역사상 최연소 파트너로 승진하는데, 물론 그의 경이적인 주식트레이딩 실적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골드만삭스의 파트너는 회사의 주식을 나누어 받는 지위이며, 공채 신입직원으로 입사한 경우 대부분 12년 이상을 근무해야 그 지위에 오른다) 2002년에는 골드만삭스 주식사업부분 전체의 공동대표로까지 승진하며, 20명으로 구성된 골드만삭스 경영위원회(Management Committee)의 멤버에 선임된다. 이쯤 되면 사장 내지 회장직을 도전해 볼 만한 커리어패스임에도 불구, 민디치는 과감히 골드만삭스와 결별을 선언하고 자기 회사를 2004년에 차린다. 민디치가 워낙 주식쟁이들 사이에서 전세계적인 “선수”로 대접받고 있는 상태였기에, 이튼파크라고 명명한 그의 헤지펀드에 돈을 투자하겠다는 투자가가 줄을 서게 된다. (물론 2004년 당시의 주식시장에 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는 점도 감안하시라) 펀딩에 들어간 지 석 달 만에 30억불(약 3조원)이란 자금이 모이게 되는데, 이 금액은 당시까지는 신설 헤지펀드가 처음 출범할 때 가지고 시작한 자금 중 역사상 최대규모였다.

여기서 다시 민디치가 기존 헤지펀드를 깜짝 놀라게 할 조치를 취한다. 보통의 헤지펀드의 경우, 90일전(즉 3개월)에 환매를 신청하면 의무적으로 환매를 해주게 구조가 짜여 있다. 이에 비해, 민디치의 펀드는, 최초 투자 후 4년6개월이 지나기 전에 환매를 신청하게 되면 투자가는 6%나 되는 환매수수료를 내야 하는 구조였는데, 이런 구조는 업계 최초로 시도되는 일이었음에도 민디치의 명성을 보고 투자하는 투자가들은 이를 대부분 받아들이게 된다. 이튼파크는 루빈의 아이들 5형제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주식 롱숏 전략을 구사한다. 현재 총 운용자산 140억불(약 14조원) 중 70% 정도가 미국 주식시장에, 그 외 30% 정도는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동유럽 등 4개 지역의 주식시장에 분산투자 되어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식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중형 채권 헤지펀드였던 R6캐피탈이란 회사를 인수하여 서서히 채권 등 주식 외 다른 투자자산으로도 전략을 다변화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2009년, 프랑스의 대형은행 BNP파리바가 벨기에 최대은행인 포티스를 인수할 때, 민디치의 이튼파크가 공동으로 들어가서 인수자금을 지원한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올 해로 이튼파크가 출범한지 꼭 10년째인데, 30억달러를 140억달러로 만들었으니, 모든 수수료 및 성공보수를 차감하고도 28%선이라는 경이적인 연환산수익률을 투자가들에게 되돌려 준 셈이다. 민디치는 옥-페리-램퍼트와는 달리, 스테이어처럼 정치에 뜻이 있다고 알려져 있기에, 올 해 겨우 47세에 불과한 그의 연령에 비추어, 훗날 그가 워싱턴 정계에 입문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상 로버트 루빈과 인연이 있는, 5명의 잘나가는 골드만삭스 출신 헤지펀드 메니저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 편에서는 은행도 못한 일을 해낸 헤지펀드 메니저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이하 끝.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부문 팀장

[약력]
- 1969년생. 연세대학교 법학과 및 동 대학원 법학석사 취득. 성균관대학교 법학박사 과정 수료.
- JP모건, BNP파리바, HSBC 등 글로벌IB에서 근무하였고, KDB대우증권 고유자산운용부장, 삼성증권 IB본부 이사를 거쳐 현재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부문 팀장으로 재직 중.

- 저서 및 역서로 "KKR스토리", "풀스골드", "헤지펀드열전", "헤지펀드의 진실; 펀드메니저의 고백", "사모펀드의 제왕", "포스너가 본 신자본주의의 위기"등 다수. 한국경제신문 등에 정기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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