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개발하는 건 기업가 정신
우연으로 생긴 불평등 참을 수 있어
시장경제 퇴행·불안 막는 '버팀목'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 kwumin@hanmail.net >
시장경제에서 분배는 능력, 노력 등 개인의 실력이 소득격차를 결정한다는 뜻의 ‘실력주의(meritocracy)’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그 격차는 정의롭다는 게 보수진영의 시각이다. 좌파는 운(運)이 너무 크게 작용한다며 이 불평등을 비판한다.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운에 의한 소득격차는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은 운 자체보다는 운을 기회로 만드는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 실력주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들은 옳은가. 그렇지 않다. 경제적 성공은 실력은 물론 운에도 좌우되기 때문에, 시장의 분배원리는 실력주의가 아니라는 자유주의적 인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고난 재주, 출신 배경 같은 운에 의해 형성된 소득이나 재산의 개인 소유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개탄했던 인물이 ‘공정의로서 정의론’을 전개한 존 롤스다. 그는 심지어 노력, 인내심까지도 타고난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좌파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시장경제는 개인이 자신의 노력에 따라 살겠다는 뜻을 잘 반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체제이지만, 타고난 능력 같은 운에 의한 분배는 막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타고난 재능은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경제적 성공과 연결되는 게 아니기에, 운은 성공의 필수요건이 아니라고 비판하면서 주목받은 인물이 ‘기업가 정신’으로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이스라엘 커즈너다. 운이 가져다준 기회를 포착하고 개발하게 만드는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금은 은퇴한 ‘은반의 여왕’ 김연아는 자신의 재능이 천부적이어서 자동적으로 성공한 게 아니라 그 재능을 알아내고 계발해 시장성을 최대화한 기업가 정신 덕에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기업가 정신이 소득과 재산을 자신의 권리로 만든 도덕적 요소인데도 이걸 간과하는 게 좌파의 ‘치명적 오류’라고 커즈너는 목소리를 높인다. 토지와 관련 소득은 ‘자연이 공짜로 준 기회’라는 이유로 전부 환수해야 한다는 ‘진보와 빈곤’의 저자 헨리 조지, 징벌적 과세로 부의 상속을 억제해야 한다는 ‘21세기 자본론’의 토마 피케티는 각각 토지개발, 상속자본 관리와 관련된 기업가적 착상·능력·노력을 무시한 것이다.
물론 기업가적 덕목이 성공의 전부는 아니다. 이런 성공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 즉 운에 좌우된다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나약한 인간의 삶에 운은 필연적으로 따라다닌다. 이를 부정하는 건 지적 자만이다. 따라서 경제적 성공은 기업가적 실력뿐 아니라 운에도 좌우되기 때문에 시장경제는 실력사회가 아니라는, 그래서 한때 보수진영과 기독교단체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운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성실과 노력의 의미가 없어지고 냉소주의가 만연해 퇴폐적이 된다. 실력만이 지배하는 세계 또한 불안정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지적 자만이 만연할 것이고 실패한 자들은 무능하고 게으르고 둔하다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자괴감에 견디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시장경제는 그런 퇴행적이고 불안한 세계로 진화하지 않았다. 실패에 대해 자신은 물론이요 우연의 탓으로 돌릴 수 있기에 시장경제의 패자는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타인들도 패자에 대해 인격적으로 낙인을 찍기보다 ‘너는 능력도 있고 열심히 했지만 운이 없어 실패한 거야. 더 분발해!’라는 식으로 위로할 여지도 크다.
실력보다 우연 때문에 생겨나는 불평등이 참아내기가 더 쉽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성공과 실패가 운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각자의 책임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책임진다는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운에만 기대지 말고 신중하게 투자를 선택하고 자기 일에 열정을 쏟도록 하는 교육적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공이 얼마만큼 실력 또는 운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자유사회에서 부자, 권세가들이 거드름을 피우지 말고 늘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 교수 kwumi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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