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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성장하라…50년 흑자 행진 이어온 장수기업의 '슬로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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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쓰카코시 히로시 이나식품공업 회장

21세 청년, 리더가 되다
적자 허덕이던 영세업체 맡아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로 키워
경영의 궁극적 목적은 '직원 행복'
월급 깎거나 해고 없이 신뢰 유지

천천히 걸어야 오래 간다
美수출 늘리며 성장세 타던 때
엔화가치 오르자 내수판매 전환
손해입지 않고 엔高 충격 이겨내
당장 수익보다 장기 투자에 집중



[ 강영연 기자 ]
지난달 5일 일본 나가노현 이나시에 있는 이나문화회관 소강당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400명이 넘는 경영자로 가득했다. 이들이 작은 시골 마을을 찾은 이유는 이나식품공업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이나경영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나식품공업은 한천이라는 평범한 식품으로 일본 내 시장점유율 80%,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작지만 강한 회사다. 50년 동안 적자 없이 꾸준히 성장하고, 경제불황으로 고용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이 같은 성장 뒤에는 쓰카코시 히로시 이나식품공업 회장이 있다. 그는 창업 초기 파산을 걱정하던 회사를 지난해 말 기준으로 매출 176억8000만엔(약 178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가난한 예술가의 아들, 20대 사장이 되다

쓰카코시 회장은 1937년 나가노현 고마가네시에서 가난한 예술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8살이 되던 1945년 아버지는 40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안 그래도 가난한 집은 더 어려워졌다.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자라면서 그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오직 하나의 바람이 됐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중학교를 마친 그에게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결핵으로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이었다. 투병은 3년간이나 계속됐다. 그는 아버지를 잃었던 병으로 다시 한 번 가족들을 힘들게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치료를 견뎌냈고, 완쾌됐다.

투병 생활은 그에게 작은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쓰카코시 회장은 “건강을 되찾고 무언가를 할 수만 있다면 그게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할 것이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건강을 되찾은 그는 고향에 있는 목재회사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잔심부름만 하는 정도였지만 건강해져서 일자리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쓰카코시 회장은 행복했다. 긍정적인 태도로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사장의 눈에도 띄었다.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반쯤 지났을 무렵, 사장은 이나식품공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창업한 지 반년 정도 된 이나식품공업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나식품공업은 분말 한천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모터 네 대가 공장 설비가 전부일 정도로 영세한 데다 경영 상태도 엉망이었다. 원료 개발은 물론 생산 기술에서도 경쟁사에 크게 뒤져 있었다. 매달 적자를 내고 있어 운영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이런 회사에 21살짜리 청년이 사장 대행을 맡게 된 것이었다. 당장 하루가 급했다. 쓰카코시 회장은 사업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화학 참고서를 사서 읽고 또 읽었다. 생산기술을 개선하기 위해 설비를 점검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회의를 매일 진행했다. 그의 열정으로 이나식품공업은 차츰 자리를 잡게 된다.

직원이 행복해야 좋은 회사

그는 회사의 목적은 직원들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익을 내고 성장하는 것은 회사를 유지하는 수단이자 경영의 결과지 경영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라고 쓰카코시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이익을 내고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의 결실은 직원들과 함께 나눴다. 이나식품공업의 지난해 대졸 평균 초임은 20만7000~21만3000엔(약 208만~215만원) 정도로 대기업 수준이다. 일본의 평균 대졸 초임 19만8000엔보다 높다. 이나식품공업엔 정리해고도 없다. 쓰카코시 회장의 경영방침 중 하나가 회사 사정으로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쓰카코시 회장은 “인건비는 비용이 아니고 행복을 얻고자 회사에 들어와 열심히 일한 직원의 노동의 대가”라며 “비용을 절감한다고 해고하거나 월급을 줄이는 것은 직원들과의 신뢰관계를 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다른 회사에 견학을 보내거나 다른 업종과 교류하는 연구회 및 강연회에 참석하게 한다. 한천 산지인 인도네시아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여행 겸 출장도 자주 보낸다. 1973년부터는 직원들이 매년 국내와 해외를 번갈아 가면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업무로 지친 몸을 달래고, 동료와 친목을 다지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쓰카코시 회장은 “기계는 정해진 기능밖에 할 수 없지만 사람은 의욕과 열정만 있으면 본래 능력보다 2~3배를 발휘하기도 한다”며 “회사는 직원들이 이런 의욕을 가질 수 있게 적극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원히 존속하는 회사를 만들어라

쓰카코시 회장이 가장 경계한 것은 급성장이다. 그는 회사가 진출한 시장에 더 이상 수요가 창출되지 않을 한계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고 그곳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설정한 것이 적정 성장률이었다. 회사가 진출한 업종, 규모, 역사, 시장 상황 등에 따라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성장률을 정하는 것이다. 호황으로 시장 상황이 좋아져도 욕심을 내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 이나식품공업의 미국 수출이 크게 늘어나는 와중에 엔화가치가 점점 오르고 있었다. 한때 전체 매출의 70%가 여기서 나오기도 했다. 해외시장을 개척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도 있었지만 쓰카코시 회장은 오히려 가장 위험한 때라고 판단했다. 수출 물량을 줄이고 국내 판매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전체 매출에서 국내와 해외 비율을 비슷한 수준까지 맞췄다. 1985년 플라자합의가 이뤄지면서 엔화가치가 달러당 100엔까지 올랐지만 이나식품공업은 손해를 보지 않고 사업을 지속해 나갈 수 있었다.

당장 좋은 결과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했다. 먼저 업무효율이 떨어지더라고 경력사원이 아닌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신입사원을 뽑지 않으면 직원들의 연령 구성에 심한 불균형이 생길 수 있고 미래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다른 회사와 가격으로 경쟁하기보다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쓰카코시 회장은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과 수요를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며 “1970년대 연구소를 설치하고 한천의 원료인 우뭇가사리와 한천 생산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전 직원의 10%를 연구개발 부서에 배치할 만큼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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