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습니다
인간·지구, 초신성 폭발하며 방출된 물질서 나온 것
별은 한마디로 부처…無爲로 자연에 순응하며 간다
끊임없이 채우려는 인간, 별처럼 조절하며 살아야
‘별 볼 일 없는 사람.’ 별을 관측하는 천문학자들은 자신들을 이렇게 부른다. 평생 별을 보고도 경제적인 덕을 보지 못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한 것.
왜 원시시대 이래 인간은 별을 관측해 왔을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캐기 위해서다. 지구 생명체의 구성 물질을 뜯어보면 별에서 왔다. 별을 보면 생각의 넓이와 시간의 길이가 달라진다. 오늘 밤 빛나는 별은 초속 30만㎞의 광속으로 수천년, 수억년 걸려 지구에 닿은 빛이다.
한국 천문학의 개척자인 이시우 서울대 천문학과 명예교수(77). 그는 1998년 정년을 5년 앞두고 퇴직했다. 후학에게 교수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서였다. 이후 독학으로 불교 경전을 공부했다. 그를 지난 24일 오후 3시부터 3시간 동안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공원과 찻집에서 만나 걷고 대화했다. ‘별처럼 무위(無爲)적으로 살라’고 강조한 그는 실제로 별처럼 사는 것 같았다.
▷집이 여기에서 가깝나요.
“걸어서 10분 걸려요. 혼자 나와요. 낮에는 더워서 저녁 먹고 매일 오후 6~7시쯤 나와서 1시간씩 걸어요.”
▷여기서 밤에 별이 보입니까.
“잡광이 많아서 안 보여요. (웃음)”
▷북두칠성이 하늘 어디쯤 있나요.
“여름에는 지평선 가까운 데 있죠. 북극성은 그 아래쪽에 있고요.”
▷걸을 때는 무슨 생각을.
“늘 사색을 합니다. 요즘은 쓰는 책 내용을 정리하고요. 걸을 때 절대로 옆을 보지 않고 아래만 내려다봐요. 잡생각이 없어지죠. 혼자 걷는 게 편합니다. 남이랑 보조를 맞출 필요도 없고요. 몰두하기에 좋죠.”
▷걸으면 뭐가 좋나요.
“소화도 잘 되고요. 집에 앉아 있다가 나와서 걸으면 다리에 힘도 생깁니다.”
▷니체는 걸으면서 사유한 글을 극찬했는데.
“책상머리에서는 억지로 짜내는 생각이 많죠. 외로움을 좋아해야죠. (허허) 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합니다. 원래 경북사대부중을 다니다 고2 때 독감을 앓은 뒤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에 들어갔어요. 동문이라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저는 독학 인생입니다. (웃음)”
▷불교도 독학으로 공부합니까.
“순전히 독학이죠. 스님한테 물은 적이 없죠. 한글로 번역된 불교 경전의 논서를 봅니다.”
▷서울대 교수 정년을 5년 앞두고 퇴직한 뒤 절에 들어갔는데.
“하안거(夏安居)가 뭔지 알고 싶어서 한 번 해봤죠. 얻는 것보다 실망을 더 하고 나왔죠.”
▷어떤 실망을.
“저는 절에 가면 이야기를 많이 하고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목소리 길게) 앉아 있을 줄은 몰랐죠. 아침 먹고 나면 앉아 있고, 또 점심 먹고 나면 앉아 있고. 서로 말을 못하게 합니다. 마음에 영 들지 않더라고요. 두 달 걸리는 하안거를 다 못 채우고 10여일 남겨두고 나왔습니다. 참선 자체는 좋은 건데, 우리나라의 참선은 방법이 잘못됐어요.”
▷우리는 왜 별을 보고 공부해야 합니까.
“하늘의 별을 보면 어떤 그리움이 떠오르죠. 왠지 모르게 사랑하죠. 그건 우리 의식 안에 우주적 잠재의식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인간이나 지구, 태양을 구성하는 수소 산소 같은 모든 물질이 태양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초신성이라는 별이 폭발하면서 방출된 물질들에서 나온 거니까요.”
▷우리 몸의 구성 원소는.
“태양의 성분(아래 표 참조)은 수소 헬륨 산소 탄소 질소의 비중으로 이뤄져 있죠. 인간과 박테리아의 성분도 휘발성이 강해 다른 원소와 잘 섞지 못하는 헬륨을 빼고는 수소 산소 탄소 질소 차례로 돼 있습니다. 만약 인간의 씨앗이 지구에서 왔다면 인간은 주로 산소와 철, 규소로 이뤄졌어야 하죠. 또 지구의 대기 성분으로 만들어졌다면 질소와 산소로 채워졌어야 합니다.”
▷별은 우리 몸의 고향입니까.
“잠재의식의 고향이죠. 형이고 동생이고, 증조할아버지이고 고조할아버지죠. 원초적 조상입니다.”
▷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별은 부처예요.”
▷무슨 뜻인가요.
“불교의 싯다르타 붓다가 아닙니다. 샛별(금성)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부처같이 사는 사람을 부처라고 이름을 붙인 거예요. 별은 무위(無爲)적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남에게 어떤 피해를 주지 않죠. 별은 특별한 게 없어요. 별의 세계에서 평등성과 보편성을 배워야 합니다.”
▷보편성은 뭔가요.
“특출난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건물이 세계 최고다 하는데, 그 건물이 몇 천년 가겠어요? 누가 1등이다, 2등이다 떠들어대도 세계와 우주에 나가면 다르죠.”
▷별도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는데요.
“사람의 키와 몸 같은 차이입니다. 별은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최고’라고 떠들지 않죠.”
▷무위(無爲)는 뭡니까.
“조작을 안 하는 겁니다. 자연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인간은 조작을 많이 하거든요. 이성이 발달해서 그런지 조작합니다. 조작은 대체로 자기중심적이에요. 유위적인 것을 버리고 무위적인 세계로 나아가려면 별을 봄으로써 과도한 탐욕을 버리고, 남과의 억지 경쟁을 버려야 합니다.”
▷인위를 안좋게 보나요.
“아닙니다. 좋은 인위가 있죠. 예컨대 스마트폰을 쓰면 좋은 점도 있고 편리하죠. 대신에 사고를 싫어해요. 언어가 없어져요. 문자를 싫어해요. 그러면 인간 본성에 대해 어떤 피해를 주지 않겠어요.”
▷우주의 법칙과 불교 법칙의 닮은 점은.
“연기(緣起)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인연생기(因緣生起·모든 인연은 이어져 있음)의 약자인데 모든 불교 경전에 나오는 부처가 한 말입니다. 쉽게 말해 주고받음이죠.”
▷설명을 좀.
“인연생기는 양면성이 있어요. 고통과 쾌락,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동전의 앞뒤처럼 동시에 같이 있어요. 앞면이 나오면 뒷면은 숨어서 함께 나타나지 않습니다. 비동시적 동거성이죠. 행복과 고통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거죠. 그게 중도(中道)입니다.”
▷별과 인간의 차이점은.
“137억년 전 빅뱅 이후 탄생한 별은 자기가 가진 수소와 탄소 같은 양식을 태워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인간은 빈손으로 태어난 게 근본적인 차이점이죠. 그래서 사람은 식량과 지식, 욕망을 끊임없이 채우려고 하는 겁니다. 별처럼 살려면 조금 부족하게, 약간 불편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별은 죽으면 그 앞세대 물질이 다음 세대 별로 이어집니다. 인간도 생로병사를 거쳐 한 줌의 재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식물, 동물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무생물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이 태어날 때 원래는 원초적 무생물이었죠? 분자로 구성된 돌에 외부에서 열을 가하면 뜨거워지고, 차가워지는데 돌 구성 분자가 외부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함으로써 조절하는 거죠. 즉 분자가 조절한다면 생명체로 보자는 겁니다.
생명체의 기본 단위가 분자, 원자인데 무생물에서 생물이 나온 게 아니고 생명체에서 생명체가 나온 걸로 보자는 거죠. 기자님은 별을 생명체로 보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별도 생로병사와 진화를 합니다. 태양이 100억년(현재 50억년쯤 경과)을 사는데 인간은 100년을 삽니다. 1억분의 1이에요. 또 하루살이가 3~4일을 사는데 인간의 1만분의 1이죠. 하루살이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태양을 이해할 수 없죠.”
▷우주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요.
“태양의 1억분의 1밖에 못사는 존재예요. 하찮은 존재죠. 그러면서 위대한 존재입니다. 왜냐면 그런 환경 속에서 지혜를 쌓아서 문명을 일으켰으니까요. 위대함을 올바르게 펼쳐야 하는데, 집착을 버리고 자기 일에 충실하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늘의 이법을 따르라고 말한 칸트 얘기처럼 하늘의 별을 봐야죠.”
▷아마추어 천문가들도 별을 보러 호주에 가는데.
“거긴 별이 찬란하고 많습니다. 태양과 지구는 은하 평면의 위쪽에 떠 있어요. 지구 남반구에서 별을 봐야 아래에 있는 은하 중심부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별자리를 보면 가장 감동적인 별은.
“우리 천문학자는 별자리를 안 봅니다. 저는 우리 은하계에 있는 100만개의 별이 모인 구상성단(지구에서 2만8000광년 떨어짐. 나이 100억년 이상인 1세대 별의 군집) 7~8개를 몇 년 동안 집중 연구했죠.”
▷신라시대엔 첨성대도 있었는데.
“실제로 첨성대 안쪽에서 올라가 봤는데 별을 관측하는 건물이라기보다는 군사 망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을 보려면 위가 뚫려야 하는데 위에는 돌 상판이 두 개나 놓여 있었어요. 옆으로 본 거죠.”
▷우주에서 산업화할 기술은.
“필름회사인 코닥이 천문학 덕분에 커졌어요. 정밀 해상도를 필요로 하는 천문학 필름을 만들다가 성장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핵심 부품인 CCD(이미지센서)도 처음 별을 찍다가 발전해서 MRI(자기공명영상촬영)까지 개발됐고요. 미국에서는 컴퓨터를 처음 개발하면 천문대에서 테스트합니다.”
▷점성술은 믿을 만한가요.
“저는 점성술을 잘 모릅니다. 천문학하고 관련 있는 건 아니죠.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재미로 보는 거지요.”
▷별처럼 살고 있나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냥 가는 거니까요. 저는 시신을 일산 동국대병원에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지갑에서 기증희망등록증을 꺼내 보이며) 이걸 발견한 사람이 병원에 전화하면 바로 가져간답니다.”
▷언뜻 수목장을 원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제가 죽었을 때 아무도 부르지 말라고 유언을 이미 남겼어요. 병원에서 연락 오면 저를 찾지 말고 집에서 TV나 보라는 거예요.”
▷장례도 치르지 말라는 건가요.
“아니 아니(몇 번이나 강조) 왜 치러요. 시신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끝났는데. 싫어요. 괜히 바쁜 사람들을 왜 불러요.”
▷의학 발달을 위해 기증하는 것입니까.
“어차피 갔는데 그게 뭐 중요해요. 남은 것은 알아서 하라고 그래요.”
■ 외계에 지적생명체 살 확률?
“거의 100% 확신, 100억개는 있다…우리가 모를 뿐”
50여년간 별을 관측, 연구해온 이시우 명예교수는 지구 밖 우주에 사람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살 확률이 거의 100%라고 확신했다.
▷태양계 밖에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살 확률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거의 100%입니다. 우리 은하계에는 1000억개의 별이 있는데 태양은 그중 하나죠. 또 행성인 지구가 하나 있고 우리 인간이 있습니다. 태양과 지구 같은 별이나 행성이 우리 은하계 내에 없다고 부정한다고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우리처럼 진화한 지적 생명체가 100억개 정도 있을 겁니다. 별 하나에 지구와 같은 행성이 여러 개 있으니까요.”
▷왜 우리가 모르나요.
“우리가 그쪽과 교신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너무 멀어서요. 우리가 전파를 보내서 그쪽에서 받는다면 다행이죠. 그렇더라도 해석을 해서 우리에게 답을 줄 정도가 돼야죠. 모르면 그냥 지나가는 겁니다.”
▷태양계 밖에서 오는 전파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이상한 전파가 나오는지 지금 지구에서 전파망원경을 통해 받고 있어요. ”
▷지구에서 외계 전파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칠레에 설치하는 세계 최대인 직경 25m 마젤란 망원경은 무엇보다 외계 지적 생명체를 탐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 호주 등과 1조원을 투입해 2020년 완공하는데 한국이 10%인 1000억원을 내기로 했습니다. 또 한국이 칠레, 호주, 남아공 천문대에서 내년부터 외계 행성 탐색 시스템도 가동합니다. 우리 천문학 수준이 일취월장한 거죠.”
▷성공 가능성은.
“적어도 25년 안에 100만개 정도의 별을 관측해서 전파를 보내는 외계 행성을 찾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행성을 찾은 뒤에는 우리가 신호를 보내야죠.”
▷만약 외계에서 지적 생명체를 찾게 되면.
“문화 수준이 문제인데요. 우리보다 더 진화했는지, 덜 진화했는지도 모르고. 어떤 언어로 교신할지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잘못된 언어를 써서 그쪽에서 전쟁 신호로 해석하면 큰일이잖아요. 외계 지적 생명체를 찾으려면 천문학자 언어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이 다 모여서 연구해야 합니다.”
■ 이시우 명예교수는
1937년 대구 출생. 검정고시로 서울대 천문학과에 입학, 석사를 마친 뒤 미국 웨슬리언대 천문학 석사, 호주국립대에서 관측천문학으로 박사. 경북대와 서울대 교수 역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및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 ‘우주의 신비’ ‘천문학자와 붓다의 대화’ ‘붓다의 세계와 불교 우주관’ ‘별처럼 사는 법’ 등의 책을 썼다.
정구학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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