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기자의 car&talk
[ 최진석 기자 ]
“일본의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은 실패했다.”
2012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오토쇼’에서 기자와 만난 존 크라프칙 당시 현대자동차 북미판매법인장은 “제네시스가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독립 운영되는가”라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도요타(렉서스)와 혼다(어큐라), 닛산(인피니티)은 25년 전 고급 브랜드를 론칭한 뒤 미국의 고소득층을 겨냥했다”며 “딜러를 분리하고 고객 서비스 품질도 높였지만 판매 실적은 저조했다”고 지적했다.
2년 뒤인 지난 1월, 존 크라프칙에 이어 법인장 자리에 오른 데이브 주코브스키를 같은 행사장에서 만났다. 그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제네시스 브랜드를 별도로 운영하지 않습니다. 일본처럼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겁니다.”
일본의 프미리엄 브랜드는 정말 실패한 것일까. 렉서스와 어큐라, 인피니티는 모회사의 수익을 갉아먹는 골칫덩이일 뿐일까. 렉서스가 처음 등장한 1989년 미국 자동차업계는 깜짝 놀랐다. 당시 렉서스가 내놓은 대형 세단 LS400의 가격은 3만5000달러였다. 동급 차종인 벤츠 420SEL 가격(6만1000달러)의 57.4%에 불과했다. 소비자들은 3만달러 미만으로 싸지만 품질이 형편 없었던 링컨과 캐딜락 대신 렉서스로 눈을 돌렸다. 렉서스는 1990년 4만2806대가 팔렸고 매년 2만~3만대 이상 꾸준히 판매되며 미국 고급차 시장 점유율 10%를 넘어섰다. 1999년에는 고급차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2011년까지 11년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미국 시장에 출시하며 ‘BMW 5시리즈급의 성능, 3시리즈급의 가격’으로 마케팅 전략을 짠 것은 렉서스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기도 하다.
렉서스의 지난해 판매량은 52만3000대다. 전년 대비 10% 늘었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이 렉서스 판매량 상승에 도움을 줬다. 전후 상황을 봤을 때 렉서스는 성공한 프리미엄 브랜드다.
어큐라와 인피니티는 렉서스만큼 좋은 실적을 내지 못했다. 두 현대차 미국 판매법인장은 아마도 이 두 브랜드를 지적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두 브랜드는 2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건재하다. 실적도 나아지고 있다. 이 중 인피니티의 성장세에 눈길이 간다. 인피니티는 올해 상반기 10만1220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 대비 30% 늘어난 수치다. 미국 시장 판매량은 6만대로 작년보다 14% 증가했다. 중국에선 130% 늘어난 1만4000대가 팔렸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엔진을 탑재한 새로운 콤팩트 세단 Q50이 5만대가량 팔리며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세계 4위 자동차 제조사인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앞으로 인피니티 생산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혼다 역시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신차를 출시하며 소비자층을 늘려가고 있다. 엔화 약세가 프리미엄 브랜드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어 이들 3개 브랜드의 전망은 긍정적이다.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독립시키지 않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제네시스는 현대차 울타리 내에 있으면서 프리미엄 자동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현대차의 브랜드 위상도 함께 올려주고 있다.
다만 일본 프리미엄 브랜드를 깎아내려선 안 된다. 이들은 어느 새 30년에 가까운 역사와 전통을 쌓았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중요한 자산이다. 20년 뒤 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이들의 위상은 지금보다 분명 더 높아질 것이다. 수익도 더 낼 것이다. 현대차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 있다면 염려해야 할 부분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론칭 전에 정리해야 할 일도 있다. i30와 i40, 벨로스터로 구성된 ‘PYL’ 브랜드다. 북미법인장들이 지적한 부분이 PYL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뚜렷한 개성도 없고, 소비자의 반응도 차갑다. 판매량도 저조하다. 마케팅 비용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토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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